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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경민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연세사학연구회 학림 학림 제47권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195 - 234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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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은 대원군을 하야시키고 정부관료들을 새로 임용하면서 친정체제를 수립하였다. 하지만 통치권의 안정성을 확보한 것은 아니었다. 대원군의 복귀를 바라는 활동들이 계속해서 이어졌으며, 고종은 이를 제어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 와중에 발생한 ‘박우현 사건’과 ‘신철균 사건’은 고종과 대원군 양측 모두에게 분기점이 되었다. 고종은 ‘박우현 사건’을 계기로 상소운동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고종의 의도는 실현될 수 없었다. 고종의 친정체제는 고종의 의도대로만 운영되는 것은 아니었다. 정부관료들과의 협의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이유원, 이최응, 박규수 등의 정부관료들은 대원군의 하야라는 점에서는 이해관계를 같이하였다. 그러나 대원군 세력의 처리방안에 관해서는 판단이 달랐으며, 고종과의 대립도 피하지 않았다. ‘공동의 적’인 대원군을 지지한 최화식 등 4명의 유생 처형을 둘러싼 대립은 이를 가장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고종이 친대원군 성격을 지닌 상소의 처벌강화를 천명하자마자 일어난 사건이었다. 공동의 목표인 ‘반대원군’에 있어서도 정부관료들과 고종의 처리방식이 달랐던 것이다. 이는 고종의 ‘반대원군연합’에 기반한 친정체제가 내부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대원군 측에서도 효의 논리에 기반한 상소를 통한 ‘여론전’에서 고종의 ‘친위세력’을 물리적으로 직접 공격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하였으며, 이어서 변란을 통한 위협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신철균 사건’은 대원군 세력이 언제든지 무력수단을 이용하여 정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고종은 일본과의 조일수호조규 체결을 시작으로 미국, 영국 등의 서양 열강과의 조약을 체결하면서 개혁정책을 수행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는 대원군 세력이 개항에 대한 비판여론을 이용하여 신사척사운동과 임오군란에 참여함으로써 친정체제를 위협하는 결과를 불러오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종이 의도했던 대원군 계열의 견제 혹은 숙청의 배경이 마련되는 계기는 임오군란이 발생한 이후 대원군이 다시 권력을 장악했을 때 주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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