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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종준 (청주교육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33호
발행연도
2019.3
수록면
457 - 501 (45page)
DOI
10.31218/TRKH.2019.03.133.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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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과 일진회가 각각 가지고 있었던 국가에 대한 인식에는 차이점이 존재했다. 이들은 당대 지식인들이 대개 그러했듯 새로 만들어질 국가는 이전의 전통국가와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다름’을 어떻게 규정 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근대성’에 대한 인식 차이가 나타났다. 전통을 어느 정도 유지할 것인지, 인민의 정치 참여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일본의 간섭을 어느 선까지 수용할 것인지 등등을 두고 의견이 갈라졌다. 이들 문제는 특히 ‘군주권’에 대한 인식으로 집중되었다. 고종은 전통유학에 기반하여 군주권을 강화한 상태에서 개혁 사업에 나서려고 했고, 일진회는 인민의 정치 참여를 위해 군주권을 상징적인 자리에 묶어 두려고 했다. 일본 측 역시 고종을 반일 운동의 구심점으로 파악하고 일진회라는 대중 조직을 이용하여 압박을 가하려고 했다. 즉, 국내 정치 세력 간의 갈등과 대립이 일본 제국주의라는 외부 세력의 등장으로 인해 굴절되어 버렸고, 결국 식민지화로 귀결되면서 고종도 일진회도 힘을 상실했다.
고종은 진보회 활동의 경우 탄압으로 일관했다. 고종이 진보회를 탄압한 것은 외국 병사를 끌어들여서라도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고자 했던 것과 상통하는 부분이다. 반면 마지못해 일진회 활동을 허용한 것은 독립협회 및 만민공동회 운동에 대해 일시적으로 관망한 것과 상통한다. 한편으로 일진회 탄압을 위해 일본 측과 거래하려고 했다는 소문과 『대한매일신보』의 일관된 친황제, 반일진회 입장에서 추정해 본다면 대내적 여론과 대외적 역관계에서 일진회를 압박하는 것이 고종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군주권 강화가 가장 우선 순위에 있었다는 점은 이전과 유사하지만, 외교 루트와 여론전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였다는 점에서는 이전과 달라졌다. 좀 더 명백한 연결고리들이 필요하긴 하지만 고종의 권력 강화 방식이 나름 진화하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을 듯하다. 국내 세력은 물론 일본인들 중에도 반일진회 정서를 가진 이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고종의 일진회 대응책은 어떤 의미에서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민의 역동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은 되지 못했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일진회의 국가 인식과 군주권의 위상
Ⅱ. 고종과 일진회의 정치적 역관계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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