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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보람 (대전대학교)
저널정보
역사실학회 역사와실학 歷史와實學 第71輯
발행연도
2020.4
수록면
255 - 289 (35page)
DOI
10.31335/HPTS.2020.04.7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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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수호조규의 체결은 조선이 근대 국제법 체제로 들어가는 첫걸음으로 주목되어 왔다. 당시 조약의 체결을 주도한 세력은 박규수로 대표되는 시무개혁 세력과 이유원으로 대표되는 기존 관료세력으로, 이들은 1862년 농민항쟁의 수습과 세도정권의 교체, 대원군 실각과 고종의 친정 등 19세기 조선 집권층이 걸어온 정치 노선을 대표하는 존재였다.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현실에 대한 이해는 사림정치의 이상을 추구하며 발전한 조선의 전통적 정치 문화와 사상의 범위를 뛰어 넘는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전통적 세계관 속에서 연합하여 고종의 친정을 주도하고 친정 정부에 참여하였다. 또한 대원군의 강경한 척화론이 불러올 수 있는 전쟁의 위험을 우려하였고, 일본 서계의 접수를 주장하며 일본에 대한 개방 정책을 추진하였다. 일본의 요구에 대응하는 데 있어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정책 목표는 무력충돌의 방지를 통한 민생의 안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과 협상 자리에 조선측 대표로 외교관이 아닌 무관 신헌이 파견되었으며, 조일수호조규 체결 과정에서 보여준 조선 정부의 대응은 평화 관계 유지라는 정책 목표 하에 일본의 침략 시도에는 단호하게 대처한다는 강력한 대응책이 함께하고 있는 것이었다. 협상의 현장에서 전견 대관 신헌은 이러한 조선 정부의 입장을 충실히 구현하였으며, 평화적인 결말을 이끌어 냈다. 이로써 고종의 친정을 이끌었던 조선 집권층의 목표는 달성될 수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일본의 서계 접수 요구와 ‘친정 정부’의 입장
Ⅲ. 조일수호조규 체결과 개국 정책의 목표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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