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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선숙 (사단법인 국학연구소)
저널정보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연구소 한국전통문화연구 한국전통문화연구 제23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75 - 107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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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저는 지리적으로 고구려·부여·읍루 및 예맥과 가깝고 거주지의 위치에 따라 북옥저, 남옥저(동옥저) 등으로 불렸던 국가였다. 동옥저로 비정되는 함흥평야에서는 고조선문화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다수의 세형동검과 청동제 방울이 출토된 바 있으며 이들 세형동검과 그와 관련된 청동기 유물의 분포범위는 함흥 동쪽의 낙원군 송해리부터 강원도 문천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또한 옥저는 형세가 산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있어 풍부한 해산물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토지가 비옥하여 곡식을 심기에 적합한 환경 덕분에 역사적으로 주변 나라들로부터 끊임없이 침략과 간섭을 받아왔다. 사료상에는 옥저가 기원전부터 신라와 교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사로국 단계의 삼한 제국 시절부터 동옥저가 고구려나 중국 군현 세력 외에도 신라와 교역로를 통해 독자적으로 왕래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를 증명하듯 최근 경상도 경산에서는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대에 해당하는 삼한시대 목관묘가 발굴되었는데 여기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통해 학계에서는 기원전부터 한반도 남부일대 소국들이 강력한 정치체제와 경제력을 바탕으로 교역망을 갖춘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에 따라 옥저와 신라의 경우에도 육상 뿐 아니라 해상을 통한 상호 교역망이 갖추어져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삼국지』 동옥저조에 의하면 옥저 지역에 사는 한 노인이 동해 바닷가의 여러 섬을 언급하면서 기이한 풍습이나 습속을 함께 설명한다. 이 섬은 수 십일을 표류하여 도착할 수 있었고,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들어와 과거 옥저가 위치한 함경도 안변부에서 배를 띄운 실험 결과 이틀 만에 울릉도를 찾았다고 한다. 아울러 현재까지 울릉도에서 발견되는 고고학적 유적과 유물이 3세기대 이전시기로 올라가지 않는 대신 6세기 이후에 가서야 사람의 거주 흔적을 엿볼 수 있는 토기와 같은 유물들만이 발견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3세기대 이전에 옥저인이 표류하여 도착한 곳을 울릉도로 본다면 최소한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았거나, 살고 있었다 해도 서로 말이 통하거나 문화의 이질성은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바다에서 갑작스러운 풍랑을 만나 표류했을 경우 조류의 흐름에 따라 동해를 직접 횡단하여 일본열도 서북해안지역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동옥저와 북옥저가 위치한 함경도지역 및 연해주 일대의 동쪽 바다에서 포류했다면 일본열도 서북쪽에 위치한 코시노쿠니나 홋카이도(에미시), 사도섬에 도착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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