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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선혜 (호남대학교)
저널정보
호남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인문사회과학연구 인문사회과학연구 제64권 제2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5 - 20 (1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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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은 신라 당대 뿐만 아니라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추숭과 함께 행적에 대한 다수의 평가가 이루어진 점에서 그를 한 시대, 한 지역만을 대표하는 인물로 규정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특히 최치원에 대한 후대 인식의 양상이 문묘 배향에 대한 당부(當否)를 중심으로 논의되었으므로 문묘에 배향(配享)하게 되는 배경과 의미, 나아가 출향(黜享) 및 복향(復享)의 과정을 짚어봄으로써 최치원 인식의 양상과 추이를 살펴볼 수 있다. 다만 그간의 연구에서는 고려시대의 경우 최치원의 문묘 배향이 조선까지 변화없이 지속되는 것으로 보아 최치원 인식의 양상 역시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고 파악하였다. 그러나 고려 후기가 되면 최치원의 신위는 한 차례 출향된다. 그리고 언젠가 복향되어 조선 건국 후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 최치원과 함께 설총, 안향 등이 문묘에 배향되어 있다는 기록이 보인다. 본고에서는 최치원의 문묘 배향 여부를 중심으로 고려 현종 대 배향되기까지 고려 건국을 전후한 시기부터 고려 왕실은 ‘밀찬조업설(密讚祖業說)’이나 ‘답견훤서(答甄萱書)’ 작성에 최치원을 가탁함으로써 최치원 추숭의 발판을 마련하였고 이로 인해 포섭되고 고려의 유학관료로 성장한 신라계 유학자들이 현종 대 이르러 최치원을 문묘에 배향하게 하는 배경으로 작용하였음을 살펴보았다. 이와 함께 현종 대가 대외적으로 침략과 교류가 공존한 시기였던 만큼 최치원의 문묘 배향에 대외적 자신감이 영향을 주었을 것임을 상정하였다. 한편 고려 후기 최치원의 문묘 출향의 주체를 원(元)으로 보고 중국과 대등한 신라 문화의 수준을 보여준 최치원이 문묘에 배향됨으로써 고려인들의 민족의식이 고취될 수 있다고 파악한 원(元)에 의해 문묘에서 출향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는 고려 왕의 재가없이 진행된 것으로 기록된 점에서 얼마되지 않아 복향되었을 것인데, 여기에는 공민왕 대 진행된 반원(反元) 기조가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고려시대 최치원의 문묘 배향과 출향, 복향의 과정과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최치원 인식의 양상과 추이를 파악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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