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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종수 (군산대학교)
저널정보
전북사학회 전북사학 전북사학 제57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243 - 272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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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연재 송병선의 생애와 위정척사운동, 순국 과정 등에 대하여 살펴보고, 또 가비(家婢) 공임의 순사(殉死)에 대하여도 알아보았다. 송병선은 우암 송시열의 9대손이자 노론종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선대(先代)의 명성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또 송시열 현양 사업에 매진하였다. 그는 산수 유람과 강회(講會)를 통해 각처에 수많은 문인, 제자를 양성하며 유학을 진흥시키고자 하였다. 1880년에 성균관 좨주(祭酒)가 되어 최고 산림의 지위에 오르자, ‘신사봉사(辛巳封事)’를 올리는 등 정부의 개혁에 희망을 품었지만 정부에서 전혀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자 자정(自靖: 스스로 몸을 깨끗이 가지는 일)을 고수하고 침묵하였다. 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그는 마지막 상소를 올리고, 고종을 대면하여 을사늑약의 폐지와 을사5적의 처단을 주장하다 고종이 거부하자 순국하였다. 을사늑약 체결에 항거하며 순국한 사람은 여럿 있었지만 유학자로서 순국한 사람은 송병선 한 사람뿐으로, 군산 술산리에 그의 묘소가 있다. 이에 송병선을 기억하는 많은 군산 사람들은 그의 묘소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관리에 정성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러나 점차 송병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어지면서 묘소 관리는 부실하게 되었다. 또 군산시에서는 근래 ‘군산 근대문화도시 사업’이라는 이름하에 식민지 미화 사업에 열을 올리면서도 연재를 비롯한 민족운동 관련 유적과 유물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이에 묘소는 황폐화되고 넓은 묘역에는 밭들이 들어차게 되었다. 군산시에서는 이제라도 일제 식민지 유적을 미화하는 사업을 중단하고, 민족 독립 운동과 관련된 유물, 유적을 정비, 복원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분들에 대한 후손들의 최소한의 보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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