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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욱재 (독립기념관)
저널정보
숭실사학회 숭실사학 숭실사학 제45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201 - 219 (1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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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일제강점기 호남 유림 송주헌의 생애와 활동을 검토한 연구이다. 송주헌은 송병선 등에게 성리학을 배운 연재학파의 문인으로 성리학적 가치체계를 내면화한 인물이었다.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한 후, 그는 스승에게 배운 ‘義理之學’을 실천하는 것을 자신의 나아가야 할 길로 삼았다. 그는 만동묘가 있는 화양동과 단종과 그의 충신들의 위패를 모신 숙모전 등이 있는 동학사를 왕래하며 2월과 8월 춘추 제사에 참여하는 등 위정척사의 의리를 고수하였다. 1919년 거국적인 3·1운동이 일어나자, 3·1운동에 공식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상황을 반성한 유림은 파리장서운동을 펼쳤고, 송주헌도 조선 유림을 대표하는 서명자로 파리장서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그가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바로 순종복위운동이었다. 이는 복벽주의적 독립운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동지들과 함께 연명으로 순종이 복위하여 조선의 독립을 천명하라는 내용의 상소문을 작성하고 순종에게 직접 올리고자 하였다. 중도에 일본 헌병에게 잡히며 실패로 돌아가고, 그는 8개월 동안 감옥에 수감되어 고초를 겪다가 석방되었다. 그후 조선고사연구회에도 참여하여 일본까지 가서 독립운동의 의지를 밝혔으나, 결국 뜻을 얻지 못하고 은거하였다. 그는 비록 근대적 민족의식을 습득하지 못하고 평생 성리학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었지만, 일본을 ‘島夷’로 인식하고 죽을 때까지 타협하지 않고 저항의식을 견지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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