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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선미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한국민족문화 한국민족문화 제67호
발행연도
2018.5
수록면
363 - 396 (34page)
DOI
10.15299/jk.2018.05.67.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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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 부산에서는 진보적 종교계를 필두로, 민주세력의 결집이 두드러진 현상으로 나타났다. 이와 연동하여 1978년 부산대에서 벌어진 두 차례의 시위 기도는,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학생운동의 기반을 확충하는 데 기여했다. 1979년 부산대에서는 조직적 학생운동이 등장했고, 비판적 사회인식이 확산되었으며, 노동야학을 통해 학생운동의 외연이 확장되었다. 그 결과 소위 ‘학생운동권’이 형성되었던 바, 이는 부산대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1979년 부산대의 시위는 전개되었다. 부마항쟁을 촉발한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 시위의 발단은 최초의 부산대 운동권 정책회의에서 찾을 수 있다. 2학기 개학을 전후한 시기에 개최된 이 회의에서 이진걸 그룹의 계획이 최초로 부산대 ‘학생운동권’에 공론화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부산대 학생운동권은 조직력을 총동원하여 시위를 준비했지만, 경험부족으로 인한 실책으로 시위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시위 실패로 인한 아쉬움과 자책감은 이미 학내에 만연한 비판적 정서와 맞물려 가눌 수 없는 분노를 촉발했고, 이를 발판으로 예상에 없던 정광민이 등장하면서 시위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제 학생운동권은 정광민과 결합했고, 마침내 5천여 명이 참여하는 거대한 유신 반대 시위가 폭발한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민주역량의 결집과 조직적 학생운동의 등장
3. 부산대 학생시위의 발생과 부마항쟁의 전개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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