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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선경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동국사학 동국사학 제67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273 - 306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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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세종 30년 내불당 불사를 『사리영응기』의 내용을 통해 검토하였다. 내불당 불사에 대해 세종 개인의 신앙에 의한 것이라고 치부하기보다 국초 국가의기틀을 마련하고 정비해 나가는 국왕으로서 세종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조선 초기 공적 영역에서 불교는 축소되어 갔지만 왕권과 왕실의 위상 강화를 위한불교의 역할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세종이 그린 왕실과 불교의 관계를 검토하는데 있어 『사리영응기』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내불당 불사는 세종의 기획 하에 진행되었으며 『사리영응기』의 편찬은 내불당불사의 마지막 단계였다. 세종은 김수온 등에게 『사리영응기』를 편찬하게 하고 이를 유사에 명하여 금속활자 본으로 간행하게 하였다. 내불당 조영과 경찬법회 사리이적을 기록한 『사리영응기』는 왕실의 불사를 현창하기 위해 편찬된 것이다. 세종은 불사에서 담당자 배치 또한 치밀하게 준비하였다. 각각의 업무에 전문인력을 배치하고 대군들에게 총감독하게 하였다. 또한 장중하고 신성한 불상 이운 행렬의 중심에는 왕실 구성원들이 배치되었으며 세종은 신곡을 지어 불상을 불당에 안치할 때 연주하도록 하였다. 왕실 구성원을 왕실불사 전면에 내세운 것은 세종의 의도와 관련 깊다. 세종은 대군들을 동원하여 왕실불사를 설행하는 전례를 세자에게 남김으로써 왕실 구성원이 불사에 참여할 수 있는 전통과 안정적인 환경에서 왕실불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끝으로 내불당 법회에서 연출된 ‘사리이적’을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하나는 세종이 사리가 지니는 상징성을 명확하게 인지하였고, 이를 통해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자 하였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측면은 세종이 태조의 전례를 답습하여 사리이적을 연출하였고, 이로 인해 끊어졌던 사리이적의 전통이 후대에 다시 이어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이를 계승하는 모습을 문종에게서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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