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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 미술사 제49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87 - 122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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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돈암동에 위치하는 흥천사는 신덕왕후 강씨(?∼1396)의 무덤인 정릉의 願堂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태조대 창건된 흥천사는 태종대에 이르러 황화방이라고 불리는 현재의 정동 부근에서 돈암동 지역으로 위치를 옮겼다. 흥천사는 19 세기 중반에 이르러 고종의 私親인 흥선대원군 이하응 (1820∼1898)이 권선을 하고 ‘興天寺’라는 편액을 내린 이후 왕실의 안녕을 비는 원당으로 자리 잡았 다. 이후 흥천사는 왕실의 친인척 뿐 아니라 왕실, 그리고 상궁들의 시주로 불화를 비롯한 여러 佛事 가 이루어졌다. 본고는 조선 말기에 이르러 왕실의 원당으로서 흥천사에 봉안된 불화의 특징과 제작화승, 후원자 등을 살펴보는 것이 주목적이다. 흥천사의 불화는 왕실이 아닌 일반인이 시주를 하여조성되기도 했지만 주요 시주자는 왕실을 비롯한 친·인척, 상궁들이었다. 흥천사에 봉안된 불화는 1832 년에 제작된 <新興寺毘盧蔗那三身掛佛圖>를 비롯하여 19 세기 전반 조성 불화, 그리고 19 세기 중반 왕실 및 상궁들의 시주로 조성된 불화, 마지막으로 19 세기 후반에 상궁 및 일반 시주로 조성된 불화로 구분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흥천사에서 조성된 불화를 다작의 불사가 이루어졌던 시점과 제작 화승의 활동지를 중심으로 1800 년~1850 년까지를 1 기, 1850 년~1870 년까지를 2 기, 1870 년~1910 년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먼저 1 기에는 김조순(1765~1832)을 위시한 왕실 친인척들의 후원에 의해 이루어졌다. 많은 작품이 조성되지는 않았지만 이 시기에 조성된 <신흥사비로자나삼신괘불도>는 김조순과 정조의 딸, 순 조의 딸과 사위 등이 시주한 상징적인 불사였다. 2 기의 불화는 흥선대원군이 신흥사에 ‘興天寺’ 편 액을 내린 이후에 조성되었는데 흥천사에 활발하게 불사가 이루어졌던 시기와 일치한다. 이 시기에는 경상북도를 중심으로 활약한 불화승인 의운 자우가 수화승으로서 삼각산 흥천사에서 불화의 조성을 이끌었다. 한편 이 시기에 제작된 불화의 화기에는 고종과 명성황후의 命을 받들어 행한다는 ‘奉爲’가 적혀 있다. 명을 받들어 불사를 행하는 상궁들은 왕실의 안녕을 위해 불사를 행하였다. 3 기 에는 2 기에 이어 상궁의 후원이 지속되었으며 이 시기에는 왕실 뿐 아니라 일반 시주로 이루어진 불화도 흥천사에 봉안되었다. 이 시기의 불사는 근기권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대허 체훈, 긍조 등 한성부와 경기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화승들이다. 흥천사의 불화는 왕실의 친·인척 뿐 아니라 왕실, 그리고 상궁이 불사의 시주자가 된 19 세기 고종대를 대표하는 왕실발원 불화라는 점에서 의미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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