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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새미오 (제주대학교)
저널정보
대동한문학회 대동한문학(大東漢文學) 대동한문학(大東漢文學) 제63권 제63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03 - 140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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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병와 이형상이 제주목사 시기에 있었던 무속철폐의 논리를 살핀 글이다. 제주에서 이형상은 무속의례를 철폐하고 제주풍속을 바꾼 상징적인 인물이다. 이형상은 ‘어떻게 기존의 무속의례를 깨뜨리고, 교화시키려했을까?’하는 것이 본고의 시작점이다. 이어서 제주 관련 지리지를 통해서 조선시대 제주의례를 정리하고, 음사에 관한 이형상의 인식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제주에 음사가 적지 않았고, 이에 대한 당시 관점이 매우 부정적이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이어 본격적으로 이형상이 올린 장계를 중심으로 제주의례에 관련한 사항을 정리하였다. 이는 무속철폐의 논리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형상의 장계는 ‘풍운뇌우단, 산천제, 삼성묘’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풍운뇌우단은 이형상 재임기에 철폐되었다. 이형상은 국왕이 지내는 의례를 제주에서 진행되는 것에 대해 의심을 품었고, 예조에 품의한 후에 이를 철폐하였다. 산천제는 한라산신제에 관련한 사항이다. 이에 대해서는 조정에 향과 축문을 청하여 공식의례로 전환하였다. 삼성묘 건립은 제주시조와 직접 관련된 장소이기에 신중하게 접근하였다. 이형상은 모흥혈이 있는 곳에 삼성묘를 세우지 않고, 제주성안 옛 제주향교 터 옆에 삼성묘를 세웠다. 이는 무속의례가 행해지던 광양당을 벗어나 이 곳을 유교화 하려던 의도였다. 이형상의 제주지역 의례에 대한 제반조치에는 많은 반발이 있었다. 풍운뇌우단은 이형상이 떠난 후에 다시 공식의례로 복원되었다. 제주무속철폐에 대해 이형상 자신은 제주의 민폐를 없애준 것에 대한 지역사람들의 고마움으로 표현했지만, 민중들은 강제적인 조치로 인식하였다. 제주설화에서는 이형상의 조치에 대해 결국은 그의 아들이 죽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이형상의 제주지역 의례정비 방향은 먼저 기존의례에서 어긋난 사항을 정리하고, 철폐할 것은 철폐하고 남겨야할 것은 국가 공식의례로 전환시키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음사를 철폐할 수 있는 논리와 근거를 마련하였다. 이형상은 이런 과정을 통해 무속에 젖은 제주풍속을 유교화 하려고 했다. 이를 통해 제주문화에 있어 많은 부분이 유교화 된 측면은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제주 무속의례는 사라지지 않고 그 명맥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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