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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오성철 (서울교육대학교)
저널정보
서울교육대학교 초등교육연구원 한국초등교육 한국초등교육 제32권 제1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21 - 38 (1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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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교육기관인 서당은 조선 후기에 확대되었고 갑오개혁으로 인해 과거제가 폐지된 이후에도존속했다. 식민지 초기인 1910년대에는 보통학교를 능가하여 취학자가 늘어났고, 취학 규모에서 서당에 대한 보통학교의 우위가 결정적이 된 1920년대 이후에도 일정한 취학 규모를 유지했다. 해방 이후에도 일부 지역에서 명맥을 유지했다. 서당의 사회적 특질은 그것을 동아시아 사회의 유사한 교육기관인 일본의 데나라이주쿠 및 대만의 서방과 비교함으로써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 근대 이후 서당의존속은 그와 유사한 교육기관인 일본의 데나라이주쿠가 근대에 접어들어 급속하게 폐지된 것, 그리고동일하게 일제의 식민지였던 대만에서 서방이 식민지기 후반에 절멸된 것과는 대조적인 교육사적 현상이었다. 일본의 데나라이주쿠는 서민 대상의 실용적 교육기관이었으며 그것은 메이지유신 이후에 국가가 소학교 중심으로 근대적 교육체제를 형성하면서 소학교로 전환되거나 폐지되는 운명을 밟았다. 대만의 서방은 1895년 식민지 지배 이후에도 한동안은 식민지적 근대교육기관인 공학교와 병존하였으나, 대만총독부의 서방 억제책이 본격적으로 작동하면서 식민지 말기에 사라졌다. 그러나 서당은 식민지 말기까지 상당한 규모로 존속했으며 심지어 해방 이후에도 일정 규모를 유지했다. 근대 이후 서당교육의 지속은 사회사적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조선 사회 특유의 지배계층 범주인 ‘양반’의 존재방식 및 조선 후기에서 근대에 이르는 시기에 전개된 이른바 ‘양반화’ 경향이라는 맥락 속에 서당을 위치시켜 볼 때 서당의 존속이 지니는 사회적 의미가 드러난다. ‘봉제사 접빈객’으로 대표되는 행동양식을 양반의 이상형에 가깝게 만들어 일종의 사회적인 계층상승을 추구하는 ‘양반화’는 그 실현을 위한핵심적인 요건으로 ‘유교적 교양’의 습득을 요구했으며, 서당은 유교적 교양의 습득에 필수적인 한자및 한문 문해능력의 획득과 유교 경전에 대한 초보적 이해를 가능케 하는 하는 교육기관이었다. 이런점에서 서당은 일종의 보완재로서 근대적 교육기관과 병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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