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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용우 (동덕여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서양사학회 서양사론 서양사론 제148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150 - 192 (43page)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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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독일강점기 프랑스의 최대 처형장 몽발레리앵의 역사와, 전후 그곳에 대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파리 서부 교외에 위치한 몽발레리앵에서 1941-44년에 총 1,008명이 독일군사재판소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은 뒤에, 혹은 ‘인질’로 선정되어 총살당했는데 이는 강점기 4년 동안 프랑스에서 같은 유형의 총살로 사망한 전체 인원수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전후 수십 년 동안 이곳은 드골주의 기억의 성지로 자리잡았다. 1945년부터 그곳은 드골 장군에 의해 6·18 선언(1940)의 기념식장으로 채택되었고, 1945년 11월 11일의 1차 대전 종전 기념식 때에는 2차 대전기 프랑스의 대표 순국자 15명의 유해가 그곳에 안치되었다. 드골이 권좌에 복귀한 뒤인 1960년에 그곳에 세워진 <전투프랑스기념관>은 대표적인 드골주의 기념물이었다. 15명의 유해 가운데 정작 그곳에서 총살된 레지스탕스 대원은 전혀 없었고, <전투프랑스기념관>의 16개 부조 가운데 (몽발레리앵 피총살자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내 레지스탕스의 비중은 미미했다. 몽발레리앵의 정확한 전체 피총살자 수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와 잘못된 수치의 교정(‘4,500명 이상’에서 ‘1,000명 이상’으로)은 1980-90년대에야 비로소 이루어졌고, 2003년에는 모든 피총살자의 이름이 새겨진 종 형태의 기념물이 새로 만들어졌다. 이는 드골주의 기억, 국가 주도의 기억, 영웅적 기억, 주류 레지스탕스의 기억에서 피총살자의 기억, 개인의 기억, 비주류 레지스탕스의 기억으로의 이행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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