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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현규 (순천향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중국문화학회 중국학논총 중국학논총 제68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235 - 251 (1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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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임진왜란 시기 전라도 南原 지역에 소재한 명 劉綎의 기록과 유적을 모아 집중 분석한 것이다. 임진왜란 시기 유정은 남원을 여러 차례 들어올 정도로 남원과 인연이 깊은 명 장수이다. 남원 문헌에는 유정과 관련된 기록들을 살펴볼 수 있고, 오늘날에도 유정이 남긴 유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전란 초기에 유정은 女院峙를 두 차례 지나가면서 모두 바위에다 자신이 이곳을 지나갔다는 글씨를 새겨놓았다. 또 남원 객관에 남원 지역민들이 자신들을 잘 보살펴준 유정의 청덕에 대해 감읍한 내용을 담은 비석이 세워져있었다. 정유재란 때 유정은 西路軍의 수장이 되어 남원으로 내려와 한동안 머물렀다. 남원 龍鬪山에서 주둔할 때 龍頭亭에 올라 빼어난 주변 경치를 감상했고, 또 용두산 아래 釣磯에서 낚시질했다. 전란이 끝난 직후 무신 關羽(관운장)을 주신으로 모신 남원 關王廟를 대대적으로 중수하고, 또 묘우 한 곁에 중건 사적과 자신의 전공을 담은 중수비를 세워놓았다. 임진왜란 초기에 유정은 일본군을 물리치겠다는 굳은 전투의지와 조선 민초들을 잘 보살펴주는 높은 인덕을 보여주었다. 정유재란 시기에 유정은 서로군의 수장이 되었으나 일본군을 공략하는 전투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자세로 임하여 별다른 전공을 세우지 못했다. 전란 직후에 세운 중수비에는 자신의 전공을 부풀려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과시 심리가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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