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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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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Doyoung Koo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Vol.26 No.2
발행연도
2021.8
수록면
151 - 180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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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5~17세기 동안 조선이 명 황제에 보냈던 정기사행의 방물과 그 수량이 시기별로 어떻게 달라졌는지 추적하고, 그 의미를 살펴본 글이다.
국초 조선이 명에 보낸 방물은 고려-명의 방물을 일부분 계승했다. 조선 백성들이 金銀 납부의 고역을 호소하자, 세종은 明에 金銀 면제를 요청했고, 1429년 방물 구성이 변화하게 된다. 조선 조정은 당시 국고에 넉넉하게 보유하고 있는 마포와 특산품인 席의 수량을 늘리고, 紬와 말을 새로 추가했다. 구하기 어려운 표피, 달피는 추가하지 않았고, 인삼과 황모필은 황태자에게만 추가했다. 1430년에 정해진 방물이 16세기에도 계속되었다.
정기사행의 방물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다시 변경되었다. 전쟁으로 방물 마련이 여의치 않자, 조선은 전시 상황에서 보다 쉽게 확보할 수 있는 물건을 방물로 선택했다. 기존 방물은 수량이 감소했고, 쥘부채(摺扇)와 종이(鏡面紙, 白綿紙, 油紙), 벼루(畵硯), 먹(眞墨, 油煤墨), 붓(黃毛筆) 등 문방구가 새롭게 황제의 방물로 추가되었다. 주목할 점은 이 물건들이 16세기 조선의 주요 수출품이었다는 점이다. 건국 후 약 200년이 지나며, 16세기 조선의 변화된 상품 생산 지형도가 황제 방물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조선은 전쟁이 끝나고 안정을 찾으면서, 조선 초에 설계된 방물 관행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온전하게 고정되지 않고, 15세기의 관행과 17세기의 여건을 오가며 유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조선은 방물의 관행을 준수하고자 하는 원칙 하에, 조선 백성의 폐해를 고려하고, 조선의 경제적 변화와 여건을 반영하며 시기에 따라 융통성을 보였다.

목차

Introduction
15th- and 16th-Century Pangmul
Changes in Pangmul during and after the Imjin Wars (壬辰倭亂 1592–1598)
Pangmul after the Imjin Wars
Conclusion
References
Abstract
국문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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