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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홍성후 (명지대)
저널정보
근대서지학회 근대서지 근대서지 제23호
발행연도
2021.6
수록면
611 - 638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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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북한의 만화는 인민에게 가장 대중적인 예술 장르이자 강력한 선전매체였다. 북한의 만화가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충실하면서도 날카로운 비유, 과장과 생략이라는 만화의 특성을 이해하고 예술성과 대중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로동신문사는 만화라는 예술매체를 통해 인민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한 목적으로 1946년에 시사만화 잡지 『호랑이』를 창간했다. 『호랑이』에는 정치와 사회, 관료주의에 대한 풍자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우월성을 주제로 한 만화가 실렸다. 1930년대부터 1940년대 사이 화북조선독립동맹 선전부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귀국했던 장진광과 정창파는 『호랑이』의 편집과 만평뿐만 아니라 정부의 주요 요직을 맡았다. 장진광은 조선인민군 문화훈련국, 정창파는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의 책임을 맡아 1950년대까지 북한의 시각예술 분야를 책임졌다.
1948년 북한 정부가 수립되자 『호랑이』는 『활살』로 개편되었다. 활살의 책임주필을 맡았던 장진광은 만화가 회화적인 기량이 떨어진다는 조선미술가동맹 내부의 견해에 반박하며 만화가 가진 예술성을 옹호하는 등 북한의 만화계를 주도했다. 소련의 화가쿠크리닉시(Кукрыниксы)의 영향을 받은 그는 미국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그로테스크적인 만평을 주로 그렸다. 그러나 1957년 겨울부터 연안파의 김두봉과 최창익, 박창옥이 비판받자, 장진광과 정창파 또한 강등되어 직위가 해제되는 수모를 겪었다. 만화가 박승희는 『조선미술』을 통해 장진광의 ‘반당ㆍ반동적 행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였으며, 장진광과 정창파는 연안파 숙청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항일무장투쟁의 공로가 컸던 장진광과 정창파는 남한과 북한에서 이데올로기에 의해 잊힌 독립운동가이자 미술가이다. 이들은 해방 이전에 독립운동가로서 한반도의 해방을 염원했고, 해방 이후 미술가로서 북한만화의 초석을 마련했다. 이 글은 이데올로기의 대립에서 벗어나 이들의 공적을 이해하고 단절된 역사와 문화를 재조립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붓 대신 총을
3. 북한의 시사만화 잡지-『호랑이』에서 『활살』까지
4. 장진광과 정창파의 말로, 그리고 『화살』
5. 결론
Abstract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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