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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정 (진주교육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45집
발행연도
2021.4
수록면
318 - 357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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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숙종 대 후반 진행된 명사 진강의 의미를 남명 사적을 포함한 멸망기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숙종 대 처음으로 실행된 명사의 진강은 명의 사적을 이해하는 준거였던 『皇明通紀』를 주교재로 하고,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명말 부분은 『명기편년』으로 보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명기편년』은 명의 鍾惺이 당대사로 저술하고 청의 王汝南이 보완한 편년체 사서로서, 왕여남은 熹宗과 毅宗 대를 보충하고 『명계유문』을 통해 남명의 사적을 추가하였다. 이것은 남명을 명 역사의 연장으로 본 것으로서 「명기편년부록」의 형태로 영력제 치세 일부까지 다루었다. 이에 대해 숙종 대 진강에서는 융무제까지만을 대상으로 하여 명 멸망의 책임을 이들에게 돌렸다. 이것은 병자호란 후 조선이 북벌정책을 추진하면서 관심을 기울인 영력제의 치세를 배제한 것이다. 이와 함께 멸망의 주체로 비판되던 의종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인식이 변화하였는데, 이는 명 멸망의 책임을 의종에게 돌리는 시각이 대명의리의 정당성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후 대보단의 설립과정에서 진강 때까지 사용하던 회종의 호칭을 남명에서 올린 의종으로 바꾼 것은 명 멸망에 대한 변화된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이처럼 숙종 대 명사 진강을 통해 확립된 명사인식은 인조반정의 기반이 되었던 대명의리의 정당성을 역사적으로 확보하는 한편 중화의 정통을 이어가는 조선의 위상을 정립하려는 것이었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숙종 대 명사 진강과 『명기편년』의 성격
Ⅲ. 명 멸망과 南明 사적에 대한 인식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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