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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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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강희연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309號
발행연도
2021.3
수록면
145 - 17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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牧谿(13세기 활동)의 〈六枾圖〉는 선불교의 명작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인식은 20세기 초반에 형성된 것으로 작품의 실제 역사와는 무관하다. 이 글은 〈六枾圖〉의 신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전까지 〈六枾圖〉의 수용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았다.
15세기 이후 일본의 茶道界에서는 牧谿의 花卉雜畫를 茶會의 장식용 그림으로 선호했다. 이 시기 千利休(1522-1591)는 侘茶 철학과 관련해 茶會에서 말린 과일이나 열매를 후식으로 먹는 果子 문화를 성장시켰다. 여기에 어울리는 장식으로 花卉雜畫가 큰 인기를 끈 것이다. 이렇게 급증한 일본의 수요에 맞춰 중국에서 牧谿 전칭의 花卉雜畫卷이 다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6세기 일본에서 果子로 애호 되었던 감을 그린 〈六枾圖〉 또한 일본 茶道의 고유한 문화를 배경으로 등장한 그림이다. 〈六枾圖〉는 늦어도 1571년 이후 養花曲庵(16세기 후반 활동)이나 津田宗及(?-1591)와 같은 茶人의 소장품이 되어 茶會의 실내 장식으로 사용되었으며 1612년부터는 京都 龍光院에서 소장해 온 掛物의 茶道具이다. 〈六枾圖〉에 관한 일본의 기록은 주로 茶會記를 통해 확인되며 이러한 역사적 맥락으로 인해 현재까지도 일본에서는 〈六枾圖〉가 대개 名物茶道具로서 인식되고 있다.
20세기 초부터 〈六枾圖〉는 갑자기 禪畫로 수용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일본에서는 서구와 대비되는 국가의 문화적 정체성으로 禪을 강조하고 기존의 화가를 새롭게 해석했다. 〈六枾圖〉의 신화는 이렇게 선종 미술사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다. 19세기 말 岡倉天心(1863-1913) 등의 일본 미술사학자들은 당시 서양에서 인기를 끌던 선불교가 중국에서 잊혔으나 일본에서 계승되었다는 담론을 만들었다. 牧谿는 미술사 영역에서 이러한 설명에 잘 부합하는 화가로 여겨졌으며 일본의 미술사학자들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새로운 선종 미술사 담론에 牧谿를 위치시키고자 했다. 그 일환으로 相見香雨(1874-1970)는 〈六枾圖〉를 禪의 정신이 담긴 그림으로 윤색했다. 이를 접한 오토퀴멜(Otto Kümmel, 1874-1952)과 에른스트 그로세(Ernst Grosse, 1862-1927)는 저서에 〈六枾圖〉의 도판을 수록하거나 相見의 글을 인용했다. 이후 퀴멜과 그로세의 책을 접한 아서 웨일리(Arthur Waley, 1889-1966)는 〈六枾圖〉를 牧谿의 대표작으로 소개하며 크게 부각시켰다. 서양에서는 이러한 웨일리의 해석에 의해 〈六枾圖〉가 선불교의 명작으로 수용되었으며 이후로도 〈六枾圖〉는 선화로서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목차

Ⅰ. 서론
Ⅱ. 〈六枾圖〉 신화의 탄생
Ⅲ. 〈六枾圖〉의 역사적 진실
Ⅳ. 결론
참고문헌
References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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