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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淨土學硏究) 정토학연구(淨土學硏究) 제32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9 - 38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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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찰경』에 근거한 점찰법회는 중국뿐 아니라 신라와 고려, 일본에서도 유행하였다. 다만 각 나라, 각 시기마다 그 방식은 달랐다. 이 글에서는 『점찰경』의 내용과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점찰법회를 비교해 보았다. 이를 통해 점찰법회가 역사적으로 유행할 수 있었던 이유와 오늘날 시행될 수 있는 근거를 찾아 보았다. 『점찰경』은 상·하 2권으로 구성되었으며, 6세기 경 중국에서 찬술된 경전이다. 상권에서는 점찰법에 대해 상세히 서술하였고, 하권에서는 대승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신심(信心)에 대해 서술 하였다. 즉 방편과 사상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의 가장 큰 특징인 점찰법은 과거의 업, 그 업의 강약, 그리고 과보차별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점(占)’이라는 형식을 사용하지만 그 목적은 자신의 ‘업’을 관찰해 참회, 수계로 나아가도록 하는데 있다. 일찍이 중국에서는 선악(善惡)을 관찰하는 형식으로 광저우, 산둥 등지에서 유행하였으며 『점찰경』의 유포가 금지되기도 했다. 신라에서는 7세기 진평왕대 실시되기 시작했으나 그 형식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8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진표의 점찰법회이다. 특히 과보를 관찰하는 방식으로 『점찰경』에서는 6개의 목륜을 사용하지만, 진표는 189개의 간자(簡子)를 사용하였다. 이후 그의 제자들에 의해 여러 지역에 전파되어 신라만의 점찰법회를 확립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정토왕생이나 위령제의 성격을 띠고 있었으나 본질적으로 악업에 대한 참회를 강조한 것이었다. 이처럼 점찰법은 여러 변형이 이루어졌다. 그 변형은 보다 쉬운 방법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므로 점찰법회는 여러 곳에서 오랫동안 유행할 수 있었으며, 나아가 오늘날 중생을 위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식으로 시행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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