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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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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온지학회 온지논총 온지논총 제62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53 - 187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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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마산지역 권번에 대한 연구의 부재로 인해 권번에 대한 잘못 된 정보와 존재여부조차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 시작되었다. 알려진 바와 달리 과거 신문기사에는 일제강점기 마산지역 권번과 관련한 많은 기사들이 있으며, 이를 토대로 권번의 설립과 운영, 소속기생들의 활동에 대해 알 수 있다. 마산지역의 권번은 남선권번, 마산예기권번이 있었다. 남선권번의 해산 후 그 후신으로 마산예기권번이 설립되었던 것으로 두 권번은 같은 권번으로 밝혀졌다. 남선권번은 1919년 설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지역의 재력가 등 여러 후원세력으로 당시 문창권번이나 마산예기조합과의 분쟁 속에서도 계속 존재할 수 있었다. 특히 마산예기조합과의 분쟁에서는 마산 유일의 권번이자 독립적인 운영권을 갖게 되었다. 남선권번은 1930년 2월 7일 해산되었고, 1년 8개월만인 1931년 10월 마산의 재력가였던 유지락이 1,400원을 설립자금으로 기부하면서 오동동의 상남천 부근에 재설립된다. 소속기생은 60명으로 증가하였고, 대표이사는 유지락이며, 실제 운영자는 권홍순이었다. 입학금은 5원으로 4년 과정으로 시문⋅음곡⋅습자⋅가무⋅예의를 익혔다. 이들을 지도한 선생은 오바돌, 장행진, 김덕진, 조동선 등이 있다. 남선권번의 소속 기생 중 김애정을 제외한 나머지 기생들에 대한 활동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남선권번은 1939년 9월 30일자로 당시 운영자였던 권홍순의 부채처리와 풍기문란을 이유로 경영권이 취소되고, 10월 7일 남선권번의 채권자들이 동업 형식의 주식회사로 설립되어 운영되었다. 소속 기생들은 주식회사라는 체계적인 경영아래 더욱 안정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고, 권번도 그러한 이익창출을 통해 규모를 더욱 확장 할 수 있었다. 마산예기권번은 해방 이전 마산의 유일한 권번이자 마지막 권번으로 확인되었다. 이들은 교육활동과 권번의 기본적인 활동 이외에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권번에서 배운 기예를 공연을 통해 대중들에게 선보였을 뿐 아니라 공연을 통한 수익금 기부 등을 통해 사회에 직접적 참여하였다. 이외에도 토산장려운동, 기부활동, 국악경연대회참여 등으로 지역사회와 민족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지역의 문화예술과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단순히 기예를 선보이는 것에서 벗어나 권번에서 익힌 학문과 예술을 바탕으로 지역 사회에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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