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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학학회 동학학보 동학학보 제55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35 - 77 (4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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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동학·천도교 역사상 최초의 여성 도정이었으며 여성으로서 두번째 종법사를 지낸 지성당 양이제에 대한 전기사적 논문이다. 지성당 양이제는 포덕 32년(1891) 평남의 천도교 가정에 태어났고 어린 시절부터 한글과 한문 공부를 하면서 천도교 경전공부와 신앙을 철저히 실행하였다. 이렇게 철저히 신앙생활을 실천하던 양이제는 10대와 30대에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면서 기도의 힘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비천도교인에게 시집을 가게 되고 남편이 일찍 환원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신앙의 힘으로 잘 극복해냈다. 또 사회적으로는 3·1 독립운동 때 감옥에서 옥고를 겪기도 하고 해방 후 공산치하에서도 반공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월남한 후 50대 후반에 용담정으로 들어가서 1000일 기도를 하고 적극적인포덕 활동을 펼쳤다. 그 결과 수운과 해월의 사후 잊혀졌던 용담성지를 회복하고 동학·천도교의 성지로 굳히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동학·천도교역사 최초로 여성으로서 도정직에 오르게 되었으나 다시 한번 관례를 깨고 평생직인 도정직을 80세에 젊은 동덕에게 선수하는 모범을 보였다. 훗날 지성당 양이제는 이 모든 일이 한울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뿐이라고 말하였다. 그후 포덕 121년(1980) 천도교 최고 예우직인 종법사로 추대되었고, 포덕125년(1984) 향년 93세로 환원했다. 철저한 기도와 수련으로 점철되었던 지성당 양이제는 수운이 이루었던 영적·신비적 체험의 경지에 동참할 수 있었으며, 해월처럼 발길 닿는 곳마다포덕을 펼쳤고, 그런 결과로 의암의 근본적인 동학정신 다시 세우기에 기여할수 있었다. 지성당 양이제는 지금의 용담정 성지를 회복하고 재건하는데 주역이었으며 스스로의 포덕의 결과로 도정이 되었다는 점에서 동학의 남녀평등 사상을 실천한 진정한 신앙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지성당 양이제는 한 사람의 기도와 수련 그리고 포덕을 향한 열심이 천도교 역사에 얼마나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좋은 본보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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