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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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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인문과학연구 제65집
발행연도
2020.6
수록면
223 - 244 (22page)
DOI
10.33252/sih.2020.6.65.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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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메이지 시대 초기 최초의 아이누 교육기관이었던 ‘개척사가학교부속홋카이도토인교육소’에서의 아이누민족 교육에 대하여 고찰하는 것이다. 근대 이전까지 일본 안의 외국인이었던 아이누민족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 편입되었다. 메이지 정부는 러시아와 국경 문제로 민감한 홋카이도 개척을 위해 1869년 7월 홋카이도에 개척사를 설치하였다. 개척차관이었던 구로다 기요타카(黑田淸隆)는 아이누민족을 교화시키기 위하여, 홋카이도 아이누인 100명을 도쿄에 데려가 교육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였다.
그러나 개척사는 철저한 계획과 준비도 없이 아이누민족을 도쿄로 데려가서 임기응변식 교육을 하였다. 개척사의 처음 계획은 아이누민족에게 농업기술을 가르치는 것이었는데, 이후 어린 생도는 ‘개척사가학교부속홋카이도토인교육소’에서 읽기와 쓰기 산술 교육을 하였다. 개척사는 도쿄에서의 교육을 통하여 아이누민족의 풍속과 습관, 사상 등의 일본화를 시도하였다. 이런 강제적인 시도를 아이누 생도들 쪽에서 반발하여 1년 정도 지나자 도망자와 사망자가 생겼다.
홋카이도토인교육소에서의 아이누민족에 대한 교육은 실패했다고 평가하였다. 대부분의 생도는 가나를 쓸 정도의 수준밖에 안 되었다. 이때의 실패로 인해 아이누민족에 대한 교육을 다시 시작하는 데는 몇 년의 시간이 걸리게 되고, 지방에서 소학교를 설립하면서 다시 교육이 시도된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에도시대 마쓰마에 번의 아이누 교육정책
3. 개척사의 아이누 교육 정책
4. 최초의 아이누(토인) 교육 정책
5.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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