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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헌주 (충북대학교)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93輯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01 - 136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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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1894년 동학농민군과 반동학 세력의 ‘義擧’ 선취투쟁과 지역 사회의 대응을 분석하여 당대 지역사회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하였다.
먼저 동학농민군은 성리학적 의리론을 체화했고 義를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동학 농민 전쟁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격문과 통문을 통해 義의 정신을 강조했다. 따라서 동학농민군은 스스로를 義兵으로 인식했고 봉기는 義擧로 규정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義의 가치를 전유하고 봉기의 정당성 또한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동학을 邪學으로 규정하고 있었던 유생들은 동학을 비판적으로 인식했다. 이러한 인식하에서 동학농민군을 화적 혹은 역적으로 규정했고, 반동학 집강소를 결성하여 무력 투쟁에 나서기도 하였다. 성리학적 의리론을 사상적 기반으로 삼는 반동학 세력은 동학 세력이 義擧를 전유하고자 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나 義擧를 선점하려는 과정에서 벌어진 두 세력의 무력 및 사상 투쟁의 여파, 그리고 동학농민군 참여자 색출을 위한 관군의 폭력은 지역 사회 주민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지역 사회에서는 동학농민군과 반동학 세력을 모두 거부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義를 선취하기 위한 두 세력의 치열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義擧의 명분은 결국 광범위한 사회적 공감대를 얻지는 못했던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II. 1894년 동학농민군의 義擧論
Ⅲ. 반동학 세력의 동학 비판과 義擧論 전유
Ⅳ. 지역사회의 義擧에 대한 인식과 대응
V. 맺음말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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