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송기태 (목포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민속학회 한국민속학 韓國民俗學 第70輯
발행연도
2019.11
수록면
69 - 101 (33page)
DOI
10.21318/TKF.2019.11.70.69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에서는 일제강점기 이후 패류양식이 발달하면서 갯벌밭이 확산되는 과정을 주목했다. 한국이 갯벌양식어업은 한말까지 일부 어촌에서 소규모로 행하던 것으로 산업화의 단계로 이행되지는 못하였다. 20세기 이후 해산물 양식기술이 발달하면서 전국의 갯벌은 김, 굴, 바지락 등의 양식어장으로 변모하였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연구지역은 일제강점기 3대 굴양식어장의 하나인 전라남도 고흥군 해창만이다. 해창만은 소규모로 굴양식을 하던 곳인데, 일제강점기에 넓은 갯벌을 양식장으로 개간하여 전국에서 손꼽히는 굴양식지역이 되었다. 한국의 갯벌패류양식과 관련해 고흥지역은 특별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
먼저 20세기 초 전국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한 굴양식업의 추이를 파악하였다. 해창만이 굴양식지로 변모한 것은 일본인이 간척을 시도하면서부터다. 주민들은 갯벌을 간척하여 농토로 바꾸려는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 어업조합을 설립하고, 넓은 갯벌을 경작지처럼 분할하여 굴양식지로 개간하였다. 1926년부터 굴양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1930년에 어업조합을 결성하는데. 이후 2-3년만에 전국 3대 굴양식어장으로 알려지게 된다.
다음으로 해창만에서 자생적으로 발달한 굴양식기술에 대해 그 가치를 주목하였다. 20세기에 일본으로부터 굴양식기술이 들어오지만, 고흥 해창만에서는 소나무 말목을 이용한 자생적 굴양식 기술을 창안하였다. 김양식을 위해 세워두었던 소나무 말복에 굴이 붙는 것을 관찰하고 송지식 굴양식 기술을 창안한 것이다. 일본인들 지주식 굴양식을 할 때 주로 대나무를 사용하였는데, 해창만에서는 다양한 수종을 시험하여 소나무 말목이 굴양식에 가장 적절한 수종임을 확인한 것이다. 따라서 지주식 굴양식 기술은 일본과 유사하지만, 소나무를 이용한 해창만의 송지시기 굴양식은 자생적인 것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해창만의 굴양식장은 조직적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갯벌밭의 형태가 뚜렷한 점에서 특징이 있다. 갯벌을 굴양식장으로 조성하면서 소유지 간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돌담을 쌓고, 돌담 사이로 물길을 내기도 하였다. 그래서 썰물로 드러난 갯벌을 보면 흡사 농경지와 같은 모양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해창만의 갯벌밭 양식방법은 인근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경작지 형태의 갯벌밭 문화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현재 고흥을 중심으로 인근 남해안의 갯벌밭이 농경지의 모양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해창만 굴양식기술의 확산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론
Ⅱ. 일제강점기 굴 생산현황과 주요 생산지
Ⅲ. 고흥 해창만의 대단위 굴양식장 성립과 기술이 창안
Ⅳ. 굴양식기술이 전파와 갯벌밭 환경에 따른 적응
Ⅴ. 결론
참고문헌

참고문헌 (27)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