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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탐라문화 탐라문화 제61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95 - 122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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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봄부터 제주도가 결호 작전(決號作戰) 지역에 편입되면서 약 7만 8천여 명의 일본군이 주둔하게 된다. 미군의 제주도 상륙과 지상전에 대비하기 위해 해안에서 산악 지대에 이르기까지 섬 전역에 대규모의 방어 시설도 구축됐는데, 그 중 상당수가 현재까지 남아 있다. 일본 본토와 인접한 성산 지역 역시 본토 결전이 본격화되면서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화기와 병력도 집중됐다. 그 과정에서 자폭용 병기인 신요(震 洋)와 제45신요대(震洋隊) 소속의 요카렌(予科練) 생도들이 배치됐고 위안소가 설치⋅운용되기도 했다. 이 논문의 목적은 전쟁 말기 성산 지역의 상황을현지 조사와 목격자 인터뷰, 사료 분석을 통해 실증하는 것에 있다. 조사 결과, 성산 지역에 총 19개소의 군 관련 시설이 파악됐는데, 그 중에는 위안소두 곳의 존재도 확인됐다. 위안소의 상황을 목격했던 성산 주민은 당시 이지역에 주둔했던 육⋅해군 가운데서도 오직 요카렌만이 유일하게 위안소를이용했고, 그들이 ‘단추가 일곱 개 달린 멋진 군복을 입고’ 위안소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장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제주도에 일본군 위안소가 존재했다는 조사 결과나 연구가 아직 학계에 발표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 논문의 학술적, 사회적 의의는 자못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문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성산 지역의 상황을 기억하는 사람들에 대한 추가조사의 과제를 남기고 있다. 또한, 일본 제국권 내에 신요대가 주둔했던 지역에서 위안소가 어떠한 양상으로 운용됐었는지에 대한 비교 연구도 추가적으로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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