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동양학 동양학 제74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99 - 118 (20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는 부민단이 조직되는 1916년부터 한족회가 조직되는 1919년 5월 직후까지의 시기를 다루었다. 그동안 각종 자료나 연구에서 한족회 및 서로군정서 설립 이후의 사실들은 잘 규명되어 왔지만, 1916년부터 1919 년 사이의 시기는 부민단이나 신흥무관학교와 관련된 활동내용이 거의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그 활동내용이 서간도 독립운동의 일관된 지속성과 그 외연을 살펴보는 데 중요하다고 판단되어 검토하였다. 부민단은 경학사를 이은 민단조직이었지만, 한인동포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모했을 뿐만 아니라 결사대를 조직하여 무장행동을 시도하였다. 그 연장선에서 1918년 4월 길림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망라된 東省韓族生計會 가 발족하였다. 생계회의 초대회장은 신흥학교 교장과 부민단 교육회장을 역임한 呂準이었다. 생계회장 여준은 1919년 3월에 군정사를 조직하여 단장이 되었다. 그해 10월 군정사 밑에 급진단이라는 비밀무장결사를 조직하고 역시 단장에 추대되었다. 급진단은 길림에 사무소를 두고, 하얼빈·니콜리스크 등지에서 무기를 수입하고 병사를 모아 국내 진공계획을 수립하였다. 국내 진공계획은 재외 독립운동계 전반이 연관된 연합작전의 성격을 띠었다. 부민단에서 한족회로 이어지는 1910년대 후반의 시기는 서간도 독립운동의 정체기가 아니라, 생계회를 이용해서 만주 이주 한인의 자생책 마련과 국권회복의 방책을 실현하던 시기, 급진단과 결사대를 이용하여 무기를 마련하고 국내 진공작전을 도모하던 도전과 모색의 시기였다. 그리고 그 노력의 효과는 잠시 후 만주지역독립운동가들의 연합작전 속에서 전개된 청산리대첩을 통해서 구현되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