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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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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한문고전학회 漢文古典硏究 漢文古典硏究 제38권 제1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355 - 392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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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한말~일제강점기 강릉향교의 변화 양상과 지역사회에서의 역할을 고찰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갑오개혁 이후 향교 제도의 개편에 따라 강릉향교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지 정리하였다. 갑오개혁 이후 學部의 조치로 인해, 강릉향교는 유생을 입적하거나 입적한 유생을 교육하는 전통적인 향교 교육은 정지되었다. 그러나 祭享 기능을 유지하며 지역 유림의 교류와 결속을 다지는 구심점 역할을 여전히 수행하였다. 더욱이 講會나 考試 등의 행사를 개최하며 교육과 학술 기관으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시기 강릉향교의 변화 중에서 본고가 특히 주목한 것은 1908년에 있었던 화산학교의 설립 과정이었다. 󰡔花山學校雜錄󰡕, 󰡔遯湖遺稿󰡕 등의 관련 자료를 통해, 화산학교가 1907년에 이미 서당 교육을 하는 사립학교의 형태로 강릉향교 내에 존재하였으며, 1908년에 학부의 <사립학교령>이 공포되면서 정식 설립 절차에 들어가 1909년 봄에 개교하였음을 밝혀내었다. 아울러 학교의 설립을 주도하였던 鄭顯東(1850~1921)이란 인물의 인적 사항과 행적을 최대한 추적하였다. 정현동은 양양을 대표하는 유림인데 학자로 이름이 나서 화산학교의 강사로 초빙되었으며, 학교장이자 일족인 鄭顯運(1843~1913)의 후원 아래 화산학교의 설립을 주도할 수 있었다. 특히 화산학교는 설립 과정에서 강릉 지역 신식학교의 반대에 부딪히는 등, 지역 사회에서 갈등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화산학교는 전통 서당식 교육에 신식을 가미한 학교로서, 서구식 근대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을 기치로 내걸었던 신식 사립학교와는 성격을 달리했기 때문이었다. 곧 화산학교는 신학문과 구학문의 갈등, 신학교와 구학교의 대립 등을 겪으면서 설립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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