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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일례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연구 한국학연구 제70집
발행연도
2019.9
수록면
197 - 235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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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왕은 차대왕의 시해라는 극단적인 계기로 즉위하였고, 왕실의 권위는 상당부분 실추되었다. 신대왕은 왕실의 권위를 고양하고 나부세력과의 유기적인 연대를 위한 여러 전략적인 고려를 하였다. 차대왕을 시해한 명림답부를 처형하지 않고 오히려 국상으로 삼고 양맥의 관할을 맡겨 연나부세력의 지원을 얻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연나부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으로서 졸본의 토착세력인 소노부와의 정치적 협력을 추진하였다. 그렇지만 계루부 왕실을 우위에 두어야 했다. 시조 주몽 이후 제8대 신대왕에 이르기까지 이미 200년이 되도록 계루부로 왕실이 교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3세기 후엽에도 졸본에서는 前 왕실세력인 소노부가 종묘제사를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대왕은 여전히 종묘제사를 지내는 소노부보다 더 우월한 제사 형식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
신대왕은 제8대 고구려 왕으로 즉위함으로써 계루부 왕권은 형식상 신대왕 이전 7대묘의 신위를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즉 신대왕대 시조묘 제사는 천자 7묘의 외양을 통해 前 왕이 시해된 현실에서 추락한 왕실의 권위를 회복할 수 있는 의식이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신대왕대 고구려는 연나부와 소노부와의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면서 안정적인 정국 운영을 주도해 나갈 수 있었던 것으로 이해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신대왕의 계보와 즉위 과정
3. 신대왕대 연나부 세력의 정치적 부상
4. 졸본의 위상과 신대왕의 시조묘 제사 親行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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