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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인문과학연구 제62집
발행연도
2019.9
수록면
159 - 188 (30page)
DOI
10.33252/sih.2019.9.6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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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리지를 포함한 여러 문헌과 고고학 자료 그리고 자연 지리를 토대로, 강동 6주의 범위를 다시 선정하여 고려 서북면 경계를 재검토하고자 한다.
고려 서북면 경계 변화를 요나라·금나라·원나라 3시기로 구분해 살펴본 결과, 993년 서희의 담판으로 고려는 강동 6주를 차지하지만 1014년 강동 6주 일부인 보주(保州)를 요나라에게 다시 빼앗긴다. 1117년 고려는 보주를 되찾게 되면서, 보주를 의주방어사(義州防禦使)로 고치고 압강(鴨江:鴨淥江)을 국경으로 삼아 관방(關防)을 설치했다. 그 뒤 몽골군의 칩임을 받게 됐지만, 『고려사』지리지 북계(北界) 연혁에서 강동 6주를 몽골군에게 빼앗겼다거나 회복했다는 내용을 찾을 수가 없다는 점으로 볼 때, 고려 멸망까지 보주를 포함한 강동 6주는 고려가 차지하고 있었고 강동 6주가 고려 서북면 경계를 이루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요사』 지리지에 따르면 요나라는 보주 지역에 각장(榷場)을 설치한다. 각 장이 설치될 만한 자연지리와 왕적의 『요동행부지』를 검토해 본 결과, 보주는 현재 중국 요녕성 서풍현 동쪽 구하(寇河) 남쪽지역으로 추정된다. 보주는 강동 6주 중 가장 북쪽에 있던 곳으로, 보주를 중심으로 강동 6주의 범위를 추정해 보면 현재 서풍현 동쪽 구하 남쪽지역에서 철령현 동쪽 범하(凡河) 북쪽지역까지 선정할 수 있다. 이 같은 강동 6주의 범위는 『선화을사봉사금국행정록』에서 고려와 금나라의 경계라고 기록한 천산(天山), 즉 길림합달령 동쪽지역과 일치한다. 고려 서북면 지역은 대략 구하 상류를 압강(鴨淥江)으로 삼고, 길림합달령을 서북면 경계로 삼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서북면 경계 변화 검토
3. 강동 6주의 범위와 고려 서북면 경계
4.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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