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춘호 (중국담강사범대학)
저널정보
한국고전번역원 민족문화 민족문화 제39집
발행연도
2012.6
수록면
241 - 316 (76page)

이용수

DBpia Top 10%동일한 주제분류 기준으로
최근 2년간 이용수 순으로 정렬했을 때
해당 논문이 위치하는 상위 비율을 의미합니다.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10세기 중?후반 고려는 자주와 실리에 근거한 외교노선을 통해 중국의 諸王朝와 교류하였으며, 契丹과 宋은 어떻게든 고려를 자기편으로 확보하여 자신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재편을 원하고 있었다. 특히 거란에 비해 군사적으로 열세했던 송은 주로 정치군사적인 목적으로 고려와의 관계를 추진했는데, 이에 대해 거란은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후 고려는 거란에 의해 멸망한 발해의 유민들을 받아들이고, 동시에 그들의 우호의 손짓을 뿌리치고 단교를 선언하는 등 양국 간의 군사적 충돌은 마치 시한폭탄이 폭발만을 남겨 놓은 것처럼 되어버렸다. 이러한 국제환경 속에서 서희는 972년 송에 出使하는데, 그때 송의 對契丹觀이 어떠했었는지를 확인하게된다. 한편 993년 거란은 고려를 침략하여 자신들의 正朔을 받들고, 그리고 영역을 침식하지 말 것을 강요한다. 당시 고려대신들은 歸降 혹은 割地를 통해 사태를 해결하고자 하였는데, 이와 달리 거란의 침략원인을 간파하고 있었던 서희는 민족의 운명을 짊어지고 적장 소손령을 만나게 된다. 거란과의 외교담판에서 서희는 고려가 거란의 정삭을 받들 수 있고, 또한 후방에서 위협이 되지 않겠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이렇듯 고려가 거란의 요구를 받을 수 있다고 했으니 거란 역시 고려의 요구를 수용해야함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하겠다. 주지하듯 그 요구는 ① 고려가 고구려의 정통을 계승했으며, ② 압록강 유역에 거주하고 있던 女眞人들을 내쫒고 그 지역을 고려가 차지할 수 있도록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담판 이후 고려가 역사상 처음으로 국경선을 압록강으로까지 뻗칠 수 있었던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고구려=고려라는 사실을 거란으로부터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한편 ‘동북공정’을 통해 중국의 일부 학자들은 고구려가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하며 고구려=고려란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서희는 외교담판에서 “우리나라(고려)는 바로 고구려의 舊地이다. 그러므로 국호를 고려라 하고 평양에 도읍을 정한 것이다. 만약 地界를 가지고 말하면, 上國(거란)의 東京도 우리의 경역 안에 있으니 어찌 侵蝕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주장하였는데, 이 史實를 통해 동북 공정의 ‘논리’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중국의 고구려 역사왜곡으로 야기된 ‘역사논쟁’에서 1천여 년 전 서희는 이미 우리에게 이에 대처하고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교훈적인 예시를 했다는 점에서 고구려=고려란 사실은 더욱 분명하게 되었으며, 동시에 동북공정의 허구성이 보다 더 확실하게 드러났다고 하겠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10세기 중?후반 東北亞 국제정세와 契丹의 침략
3. 徐熙의 외교담판 속에 담긴 고려의 名分과 實利
4. 현대 韓中關係에 내재된 ‘歷史論爭’과 그 극복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