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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 미술사 제31호
발행연도
2008.1
수록면
73 - 101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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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인⋅숙종기 조선의 절파화풍과 明 前期 궁정화풍의 영향관계에 대하여 고찰한 것이다. 조선 절파화풍이 戴進이나 吳偉 등 중국 절파를 대표하는 화가들이 아니고, 미술사에서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궁정화가와 관련된 점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로, 이에 대한 상세한 고찰이 따라야 할 것으로 여겨졌다. 먼저 인․숙종기 문헌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중국의 절파관련 화가들은 王諤 ․ 朱端 ․劉俊 ․ 王世昌이고, 이들이 모두 明朝의 황제들에게서 크게 인정받아 錦衣衛의 여러 품직과 황제가 하사한 인장을 수여받기도 한 궁정화가임을 보았다. 또한 이 시기 조선에서 최고로 여겼던 화가는 미술사에서 잘 알려진 대진이나 오위가 아닌 왕악, 주단과 같은 궁정화가였음을 알 수 있었다. 명 전기의 궁정화가의 화풍이 한 세기 가량의 시차를 두고 인⋅숙종기 화단에 영향을 미친 것은 우선 이 시기 회화를 애호한 군왕과 서화 관련 활동을 활발히 펼친 종친들의 영향력 그리고 취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주로 연행사신을 통해 문물의 수입이 이루어졌던 당시에 명 전기 궁정화풍은 조선인들로서는 정통성과 우수성이 검증된 화풍으로 인식되었고, 따라서 그 영향력이 더욱 지속적일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록과 작품을 통해 화풍상의 영향관계를 살펴보면 왕악은 이경윤⋅이징⋅전충효의 산수화에 영향을 미쳤다. 이른바 ‘王諤勢’와 ‘郭熙才’가 인⋅숙종기 산수화의 이상경을 표상하였다. 당시 왕악의 화풍은 우뚝 솟은 험준한 山勢와 부벽준의 필법이 특징적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할 수 있다. 곽희의 화풍은 蟹爪寒林과 平遠景이 특징으로 인식되었으며 이는 조선 초기 이래 꾸준히 애호되었던 것이다. 朱端은 ‘명나라 第一筆’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높이 평가되고 있었는데, 대범한 화면구성과 조방한 필묵법이 17세기 조선에서 奇格과 神筆로 이름 난 金明國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한 이상이었다. 그러나 주단은 18세기 조선에서는 이미 잊혀진 화가였고 대신 오위의 이름이 김명국의 화풍과 관련지어 등장하였다. 이 외에 劉俊과 王世昌의 회화도 꾸준히 영향을 미쳤음을 양기성⋅장득만과 같은 숙종 말년에 활동한 화원들의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다. 양기성과 장득만은 明 궁정화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오파 혹은 남종화풍을 수용하여 개성적으로발전시켰으며, 이는 당시 화단의 화풍변화를 대변해 준다. 명말 남종화론이 화단을 지배하면서 이들 궁정화원들은 평가절하되고 그들의 작품은 송원대 대가의 것으로 변조되어 미술사의 전면에서 물러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은 남종화풍이 풍미했던 18세기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왕악세’의 산수화는 사라지고 왕악의 이름은 잊혀졌던 것이다. 함께 병칭되던 ‘곽희재’는 북송 곽희의 이름을 달고 있었기 때문에 오래 남을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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