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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 미술사 제35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69 - 113 (4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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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의 초상을 그린 眞影은 삼국시대부터 제작되어, 통일신라 이후 고덕들의 진영제작이 본격화되었다. 19세기에 이르면 高僧大德 뿐 아니라 畵僧들의 진영이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전통은 20세기 전반까지 이어졌다. 현재 19세기 초~20세기 전반의 화승 진영이 10여점 남아있는데, 쌍원민관진영(1814)처럼 동시대 화승 퇴운 신겸이 그린 것이 있는가 하면, 석옹 철유진영(1915년경)처럼 화승 본인이 그린 자화상도 있다. 19세기 이후 진영제작의 범위가 확대되었지만,화승 누구나 사후에 진영이 제작되었던 것은 아니며, 당대에 화승으로서 뿐 아니라 대선사로서, 또는 학승으로서 존경을 받고, 사찰의 발전에 공로를 쌓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화승 진영은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전반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어 각 시기별 특징을 살펴볼 수 있으며, 像主와 작가또한 당대 각 지역 최고의 화승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다시 말하면 화승 진영은 19, 20세기불교진영의 시기적, 지역적 특징을 보여줄 뿐 아니라 작가의 화풍을 고찰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처럼 19세기 이후 화승 진영이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화승의 입지가 변화했음을 말해준다. 화승 진영에는 화승의 이름과 함께 堂號를 쓰고 있다. 화승의 경우, 18세기 중엽 이후 관허 설훈,용봉 경환, 쌍원 민관 등 당호를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당호는 어느 정도 지위와 경제력을가진 사람들만이 썼기 때문에 화승으로서 당호를 가졌다는 것은, 그림실력을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어느 정도의 지위와 경제적 부를 이루었다는 것을 말한다. 17세기 후반에 이르면 사유재산제가실시되면서 승려들도 전답을 전수받았으며, 승려들이 직접 상품을 생산하거나 상업 활동을 해서돈을 모으기도 했다. 화승들은 이렇게 축적된 재산으로 사찰 내에서 일정한 입지를 확보했을 것이며, 이에 따라 당당하게 당호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지위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승 진영에는 大禪師라는 칭호도 많이 보인다. 조선후기에는 보통 선을 닦는 승려 중 高僧大德을 대선사라 칭했다. 畵師 대신 大禪師의 칭호를 받은 것은 이들이 단순히 화승에 머물지 않고 오랜 수행과덕을 쌓아 선사로서 존경받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민관처럼, 비록 명목상으로만 관직에 임명된 것이기는 하지만, 嘉善大夫의 官階를 받은 화승도 있어 당시 불교계에서 화승의 위치를 잘 보여준다. 화승 진영은 형식 또는 양식에서 같은 시기 진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화승 진영은그의 생전이나 사후, 畵僧과 인연 있는 화승 또는 가장 실력 있는 제자가 그렸기 때문에, 그것을 제작한 화승의 실력을 가늠하는 시금석일 뿐 아니라, 화승과 작가와의 관계 내지 畵脈 관계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아울러 화승들이 모두 진영의 대상이 아니고 당대에 대선사로 추앙된 화승만이 진영을 남기고 있는 것을 볼 때, 화승 진영은 각 시기 최고 화승들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으며,화승이라는 신분을 넘어 선사로서 존경받았던 화승들의 삶을 재조명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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