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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동학학회 동학학보 동학학보 제40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211 - 242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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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 역사에 있어서 단양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곳이다. 3개의 도(道)가 경계를 맞대고 있어 숨어 지내야 했던 해월에게는 은거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단양은 동학 창도 초기부터 포덕된 지역이었다. 민사엽은 1862년 수운이 접주제를 시행할 때 단양접주로 임명되었다. 그는 수운이 대구 수감시 경제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수운 사후 남겨진 가족을 돌보았다. 하지만 그가 1865년 여름 갑자기 병사하여 단양의 동학조직은 쇠퇴하였다. 수운에 이어 동학의 교주가 된 해월은 1874년 4월 단양의 사동에 은거하였다가 이듬해인 1875년 2월 송두둑에 자리를 잡은 후 1884년 6월까지 약 10년간 단양에 머물렀다. 해월은 영해교조신원운동 이후 강원도를 거쳐 단양으로 은거하였다. 단양에 정착한 후 해월은 동학 교단의 책임자로 다음과 같은 업적을 남겼다. 첫째, 어려움에 처한 수운의 가족을 보살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수운의 가족이 모두 환원하자 교단은 자연스레 해월을 중심으로 일원화되었다. 둘째, 단양의 사동과 송두둑에서 수운이 행하던 제례인 천제를 부활하여 정통성을 확보하고 교인의 집단적인 종교 활동인 고천제를 만들어 교단의 의식을 제도화하였다. 셋째, 교세가 확장되자 도차주에 강수, 도접주에 유인상를 임명해 도주인-도차주-도접주-접주의 교단 조직으로 교단을 체계화하였다. 넷째, 1879년 수운의 행적을 정선 방시학의 집에서 저술해 창도 이후 20년의 역사를 정리하였다. 다섯째, 수운이 남긴 경전을 간행하였다. 1880년 인제 갑둔리 김현수의 집에서 한문 경전인 󰡔동경대전󰡕을 간행하고 1881년 단양의 샘골에서 한글 경전인 󰡔용담유사󰡕를 간행하여 경전 간행을 완성하였다. 해월은 단양에서 은거하던 10여 년간 교세의 확장과 조직화를 바탕으로 사적과 경전을 간행하여 교단 확장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특히 사적의 정리와 경전의 간행은 동학의 전국화를 가능하게 하였다. 동학을 이단시하던 지식층과 민중들은 동학의 경전을 통해 동학의 교리에 대해 알게 되었고 사회 변혁의 사상으로 받아들이면서 동학은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는데 이러한 기틀이 단양에서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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