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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31권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77 - 124 (4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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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外餘甲幢의 異稱이 外法幢이라는 사실을 단서로 삼아 신라의 초기 지방군제인 法幢의 실체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그 결과 법당은 선행연구들에서 ‘법당 관칭 군관’이 배속된 10여종의 부대가 소속된 거대한 군사조직으로 본 군단상과는 매우 다른 군사조직이었음이 밝혀졌다. 논의를 통해 확인된 법당의 군단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법당은 지방 거점에 설치된 여러 개의 소부대로 구성된 지방 군사조직으로서 소부대의 숫자는 대략 33개로 추정된다. 둘째, 법당의 병력은 재지 유력자를 매개로 그것이 설치된 지역의 주민들을 징발․편성한 농민병사였고, 여기에 2계열(당주계열과 두상계열)의 왕경인 출신 군관들이 파견되어 이들을 지휘하였다. 셋째, 5세기 말에 이르면 신라는 국가적 차원에서 지방군제가 필요해졌으며, 지방민을 병력자원으로 삼을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524년에 최초로 지방 거점에 법당과 법당주가 설치되었으며, 이후 영역의 확대와 지방 지배의 진전에 따라 법당의 소부대들도 점차 증치되었다. 넷째, 설치 초기의 법당은 당주계열의 군관이 배속되어 실전을 대비한 군사훈련을 시행하고 유사시에는 戰場에 출전하기도 하는 전투부대의 성격을 가진 군사조직이었다. 그러나 6세기 중후반에 廣域州를 軍管區로 하는 본격적인 지방군제로서 停制가 시행되면서부터 법당은 전투부대로서의 속성이 약화되고 점차 勞役部隊로 전환되었다. 법당에 두상계열 군관이 배속된 것은 이러한 법당의 성격 변화를 收斂한 조치였다. 다섯째, 노역부대적 성격이 강해진 법당은 전쟁이 일상화된 7세기로 접어들면서 그 군사적 위상이 더욱 낮아졌으며, 그 결과 7세기 후반의 대대적인 군제개혁을 통해 소멸되고 말았다. 따라서 법당은 신라 초기의 지방군제로 창설되어 150여 년간 존속된 신라 중고기의 군사조직이었다. 여섯째, 7세기 후반의 군제개혁을 통해 법당은 餘甲幢으로 재편되었다. 특히 지방군제로서 노역부대적 성격을 가졌던 법당의 속성은 외여갑당에 가장 충실하게 계승되었으며, 같은 성격의 또 다른 여갑당이 왕경과 소경에도 분화․설치되어 경여갑당․소경여갑당․외여갑당의 3종의 여갑당으로 편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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