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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부산고고학연구회 고고광장 고고광장 제18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67 - 87 (2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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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패총으로 알려진 회현동 패총은 구야국・금관가야의 왕성인 봉황대 유적에 포함되어 있다. 그 중 D지구에서는 김해식 옹관으로 알려진 무덤이 확인되었다. D지구 옹관묘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❶ D지구에는 지석묘와 석관묘가 있었기 때문에 이전부터 묘역으로 인지되어왔다. ❷ 고김해만에 접한 D지구는 일본을 왕래하는 배들이 정박한 항구에 인접해 있었을 것이다. ❸ 3호묘에서출토된 동사는 문자기록과 관련 있는 도구로 생각되는데, 총 7~9점이 확인되었으며, 마모된 흔적으로 보아 적어도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 2명 이상 다른 사람이 사용하던 것을 부장한 것이다. ❹ 3호묘에서 출토된 동검 중 비마연동검은 부장을 위해 만들어졌던 것이며 피장자를 위해 사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❺ 당시 김해에서 지배자는 묘제나 부장품으로 보아 송국리 문화와 점토대토기문화 그리고 야요이문화도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었다. ❻ D지구에서는 1호와3호 옹관묘 2기가 확인되었고 두 옹관이 약간의 시간차를 가지는 점에서 D지구에 묻힌 두 사람은 친족관계일 것이다. 또한 옹관이 왜에서 이동한 것이라고 한다면 당시 변진구야국의 상위층과 혼인 등으로 연관된 여성으로 해석할수 있을 것이지만, ❶ 김해 흥동 1호 주거지를 비롯하여 김해식 옹관이 제작될 당시 김해에 왜인들의 존재를 상정할수 있고, ❷ 야요이 토기의 영향을 받은 토기들이 한반도 남부에서 자주 제작되는 점, ❸ 구산동 유적의 사례에서볼 수 있듯이 야요이 전・중기 전반까지는 절충형의 야요이계 토기가 많이 만들어지다 중기 중반으로 가면서 왜에서직접 제작된 반입 토기가 증가하는 점, ❹ 3호 옹관 출토 부장품의 형식이 일본 북부규슈의 부장품과 비교하면 한단계 늦은 점, ❺ D지구 출토 옹관의 형태가 일본과는 차이나는 기형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한다면 3호 옹관은 김해자체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도 높다. 더욱이 묘제는 일본 북부규슈의 야요이 문화의 요소, 한국식동검과 동사는 한반도의 한국식동검문화의 요소, 관옥은 재지적인 청동기 문화적 요소라는 복합적인 성격이 주목된다. 이상을 근거로 하면 D지구에 묻힌 사람들은 한반도남부-변진구야국과 왜를 연결하는 존재였을 것이다. 동반하여 출토된 유물 중 동사와 관련지어 볼 때, 피장자는문자와 관련된 사람일 가능성이 높고, 상당한 지위에 있던 사람이었을 것이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한반도 남부에서가장 중심지였던 봉황대 인근, 왜와 군현을 왕래하는 배들이 보이는 D지구에 무덤을 만들어 준 것으로 추정할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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