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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민수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96호
발행연도
2019.12
수록면
289 - 321 (33page)
DOI
10.37331/JKAH.2019.12.96.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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鍮石은 일찍이 서역의 특산품으로 金 · 銀에 비견될 정도의 귀금속으로 여겨졌으며 鍮石은 각종 佛具, 器皿, 장신구 등의 재료로 사용되었다. 鍮石은 현재의 黃銅, 즉 구리-아연 합금으로, 중국에서도 14세기 무렵 아연이 금속으로서 제련이 가능해지기 전까지는 자체적으로 생산하지 못했던 금속이었다.
그런데 신라에서는 8세기 이전에 이미 鐵鍮典을 설치해 국가 주도로 ‘鍮’ 제품을 생산한 사실이 주목된다. 또한 725년 주조된 상원사동종의 주조에 ‘鍮’가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하지만 신라의 ‘鍮’는 상원사동종의 성분 분석 결과 아연이 거의 함유되지 않은 구리-주석 합금, 즉 靑銅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처럼 구리-주석 합금에 ‘鍮’자를 사용하는 것은 중국과 일본에서는 보이지 않는, 신라만의 독특한 것이었다. 신라인들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買新羅物解」에 의하면 신라인들은 교역 때 사용할 구리-주석 합금 제품에는 ‘迊羅’라는 말을 사용했으며, 구리-아연 합금인 鍮石과 구분하여 사용했다. 또 『三國史記』 色服·車騎·器用·屋舍志에 보이는 興德王 敎書의 내용을 통해 신라 내부적으로 수입품이며 귀금속으로 여겨진 ‘鍮石’과 스스로 생산 가능했던 ‘鍮’·‘鍮銅’를 구분하였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와 같은 신라의 독특한 鍮石 인식은 후대의 한반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세기 李圭景이 『五洲書種博物考辨』에서 구리-주석 합금인 響銅을 ‘我東鍮’, 즉 ‘우리나라의 鍮’라고 한 것은 신라의 鍮石 인식이 조선 후기까지도 이어진 결과라 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II. 중국과 일본의 鍮石 사례 분석
III. 신라의 鍮石 인식과 그 특징
I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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