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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육군군사연구소 군사연구 군사연구 제142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37 - 64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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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개전 당시 팔공산이 위치한 대구 지역은 일본군의 진격로 가운데에서 중로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일본군의 주요 진격로이자 후방기지가 되었다. 이들은 경상좌도 지역에 대한 직접적인 침략과 부산진에서 한성으로의 보급로를 확보하기 위해 개전 초기부터 대구 지역을 침공하였으며, 이후 대구읍성에 대한 직접적인 지배를 실시하였다. 임란 개전기 팔공산이 위치하였던 대구는 일본군의 중로군의 주 진격로에 위치하여 일찍 일본군에게 점령을 당했다. 대구를 장악한 일본군은 이 지역을 주보급로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대구 부사를 비롯한 군민들이 팔공산을 항전 거점으로 활용함으로써, 의병 부대의 창의와 관군 부대의 지속적인 항전 수행이 가능하였다. 또한 8월 이후에 경상좌도의 조선군이 영천성과 경주성 수복 등의 전면적인 반격을 감행하는 등 경상좌도 주요 지역 수복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였다. 강화교섭기에는 조정에서 일본군의 재침을 대비하기 위해 요해처의 산성들이 조선군의 방어거점으로 급히 전환되는 과정에서 팔공산은 對日방어의 요충지 중 하나로 주목받았다. 이후 정유재란 시기재침을 감행한 일본군이 직산 전투 이후 하삼도로 남하하게 되었는데, 이중 가토 기요마사의 부대가 팔공산을 공격하였다. 이에 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의병 부대와 관군 부대가 팔공산 일대를 공격하는 일본군을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여 상당한 손실을 입히고, 울산으로의 남하를 강요하게 하였다. 이상에서 팔공산은 임란 개전 당시 대구 읍성이 일본군에 의해 함락된 이후 경상좌도 조선군의 주요한 항전 거점의 하나였을 뿐만 아니라, 대구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관군과 의병들을 지원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매우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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