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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경남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영남학 제78호
발행연도
2021.9
수록면
281 - 312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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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일제의 식민지 조선에 대한 도시계획의 본질적인 목적을 규명하기 위하여, 식민도시체제와 지역사적 관점에서, 남한의 대표적인 군사령부가 있었던 대구지역을 사례로 군사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고찰하였다. 대구는 영남지역 정치 경제 군사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대구항공기지가 일본 본토의 오쓰키(小月)항공기지까지 연결한다는 점에서 지역적 차원의 식민도시 개발사례로서 적합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제국주의는 1929년 미국발 세계대공황을 돌파하기 위해 전쟁을 통해 세력권을 확대하여 돌파구를 찾으려고 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은 대륙병참기지로 위치지어 졌으며, 그 법제 장치가 ‘조선시가지계획령’이다. 시가지계획령은 해상루트(쓰루가-나진-중국), 대륙루트(시모노세키-부산-대구-경성-중국) 노선을 개발하는 것이 주요목적이었다. 대구의 주요 군사 시설인 대구항공기지는 시가지계획령이 발효되기 10년 전인 1926년부터 조선총독부와 경상북도에 의해 도로공사가 추진되었으며, 1937년 1월에 동촌(東村)에 개장한다. 이와 함께 대구에도 도시계획이 결정되는데, 1937년 1월 29일 제3회시가지계획위원회에서 1965년 인구 35만명을 기준으로 시가지계획 구역, 도로망, 구획정리구간을 결정하였다. 총독은 1940년 7월 22일에 대구의 공업지구와 주택경영지구를 인가하였다. 그런데 1941년 이후 미국의 개입과 연합군의 전투가 시작되자, 대구부, 조선총독부와 육군성은 대구 시가지계획 원안을 특히 전쟁에 필요한 군사적 가로망 설치와 비행장을 긴급히 확대하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그리고 당시 한반도 남부에 설치된 항공부대 22개 중 10개가 경상도에 설치되었으며, 1940년부터 육군성은 대구항공기지와 일본의 오쓰키항공기지를 연결하여 매일 전투기와 항공수송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그리고 1945년 2월 이후부터 대구사관구 사령부와 대구항공부대는 부산, 포항, 울산, 김천, 진주, 사천 등의 군사기지, 항공부대와 연결되었다. 이처럼 아시아태평양전쟁기 대구도시계획은 시가지 구획 통제, 군사병참 도로망, 군사적 항공수송 노선 등을 위주로 전략적으로 추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계획은 조선시가지계획령이 표방하고 있는 주민의 복리 증진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병참기지의 수송을 원활하게 만들기 위한 일본육군성의 목적이 강하게 관철된 편중된 식민도시계획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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