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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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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동양학 동양학 제46호
발행연도
2009.1
수록면
181 - 197 (1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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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서만 40여년을 외교관으로 보낸 전무후무한 기록을 갖고 있는 해리 파크스에 대한 연구로 가장 많이 다룬 부분은 주일영국공사로 있던 18년(1865-83)이다. 다음은 1883년 주중영국공사로 있으면서 동시에 초대주한영국공사로서의 외교활동부분이다. 한편 파크스가 주일영국공사로 발령될 때 이미 그의 외교적 능력이 인정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주중 외교관 시절의 공적이 인정되어 1862년에 국가로부터 기사작위인 KCB를 받은 점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외교활동과 관련된 연구가 주로 1865년 이후에 치우쳐 있지만 그의 외교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하자면, 적어도 작위를 받기기전의 그의 외교활동을 점검해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 할 것이다. 한편, 파크스의 초기외교활동이 외무성 기록에서 보이기 시작한 것이 1856년에 광저우에서 발생한 애로우호 사건 때부터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시기 이후의 얼마간의 파크스 외교활동, 특히 중국에서의 활동에 대해선 집중적으로 연구된 사례가 없다. 왜냐하면 1856년에 시작된 애로우호 사건과 이어 진행된 제2차 영중전쟁이란 두 사건이 워낙 주목을 받다보니 이 사건들 중심으로 대부분의 연구가 치우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사건의 핵심에서 외교적 활동을 하던 인물들, 특히 외교현장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파크스에 대한 언급은 위 두 사건의 검토 과정 중에 잠깐 언급되는 정도였다. 때문에 본 연구에선 파크스를 중심에 당시 두 사건 관련시켜보고자 한다. 이때 그의 외교활동이 어떻게 비추어지는지를 검토하고, 동시에 그의 외교적 삶의 전반에 어떤 영향과 의미를 주었는지도 확인코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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