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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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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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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태동고전연구 태동고전연구 제25호
발행연도
2009.1
수록면
153 - 194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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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 성리학에 투철했던 조선후기의 정치는 명분상 사(私)를 배척하면서 공(公)을 가장 중요한 준거로 삼았다. 정치 의리는 공의(公義)와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 의리(義理)는 당쟁을 격화시키는 파당(派黨)의 의리[私義]에 머물 수도 있지만, 어떤 계기에 의해서든 시비(是非)가 정리된다면 사회적 합의[公義]를 이끌어 내는 기준이 된다. 공의에 입각해 확정된 국시(國是)는 당쟁의 대상이 아니라, 어떤 세력이든 지켜야할 규범이 된다. 탕평정국에서 쟁점이 된 것은 조제의 기준인 의리의 정당성 여부에 있었다. 영조대 후반의 정국 변동은 영조가 즉위 의리인 신임의리(辛壬義理)와, 후계자를 폐위시킨 ‘영조의 임오의리(壬午義理)’를 확정하고, 새로운 후계자를 정하는 갑신처분의 의리를 관철시킨 과정이었다. 정조는 영조가 확정한 신임의리와 임오의리를 대의리(大義理)로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후에 즉위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하여 정조는 자신의 즉위를 돕거나 방해했던 자들을 충·역으로 판정한《명의록(明義錄)》의리를 기준으로 전반기의 탕평을 실시했다. 정조는 노론·소론·남인을 막론한 신하들이 군주가 제시한 보편 군신의리를 공통분모로 하여 당론을 극복하도록 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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