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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南冥學硏究 南冥學硏究 제51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127 - 189 (6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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星州를 貫鄕으로 사용하는 李氏, 즉 星州李氏가 여섯 가문인데 이를 星州六李라 한다. 隴西李氏, 碧珍李氏, 星山李氏, 廣平李氏, 京山李氏, 明經李氏가 이에 해당된다. 성주를 관향으로 하고 있는 이 여섯 이씨는 각기 시조가 다르기에 서로 빈번하게 혼인이 이어졌는데, 이 경우에 관향을 같이 쓰면 同姓同本끼리 혼인한 것이 되니, 육리끼리 혼인하였을 경우에는 관향을 표기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특히 星州와 星山은 六李가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했던 관향으로, 만약 이를 오늘날의 관향이라 생각하고 그 인물을 찾으려 하다가는 육리 가운데 어느 가문의 인물인지 알기가 어려워 낭패스러울 때가 많다. 그래서 이제 이들 육리의 연원은 각각 어떻게 되며 관향 표기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여 왔던가 하는 점을 밝혀 보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각각의 성주육리 가문으로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 수 있게 하고, 성주육리와 관련된 인물을 찾을 경우에도 하나의 指南이 될 수 있을 것이기에 그 의의가 적지 않을 것이다. 논의의 결과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성주를 관향으로 하는 이씨는 여섯 가문인 바, 樂居副正 李德富의 후손 京山李氏, 廣平君 李能의 후손 廣平李氏, 隴西郡公 李長庚의 후손 隴西李氏, 明經壯元 李克松의 후손 明經李氏, 碧珍將軍 李悤言의 후손 碧珍李氏, 星山君 李能一의 후손 星山李氏가 이에 해당된다. 둘째, 京山李氏는 樂居副正의 후손이라 하여 副正李氏라고도 일컬었으며, 少府尹 李瑊의 후손이라 하여 少尹李氏라고 일컬어진 적도 있다. 셋째, 농서이씨는 오늘날 가문 전체가 ‘星州李氏’로 관향을 통일하여 쓰고 있다. 넷째, 明經李氏는 1864년 이후 碧珍李氏 족보에 합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섯째, 벽진장군 후손 가운데 李堅幹의 후손을 山花李氏라 하여 구별한 적이 있다. 여섯째, 성주육리는 공히 조선시대 공식 기록에서 그 관향을 ‘星州’로 표기하였다. 일곱째, 성주육리는 공히 사적 기록에서 ‘星州’와 ‘星山’을 그 관향으로 많이 사용하였다. 여덟째, ‘벽진’과 ‘농서’는 벽진장군 후손과 농서군공 후손을 가리키는, 성주육리 가운데서 가장 변별적인 관향이다. 아홉째, ‘京山’은 농서이씨와 성산이씨들이 잠시 그 관향으로 사용한 적이 있고, ‘廣平’은 농서이씨들이 잠시 그 관향으로 사용한 적이 있으나, 대체로 경산이씨와 광평이씨가 역사적 고유성을 가진다고 할 만하다. 열째, 오늘날과 같은 관향 구분은 1593년 이후 족보가 갖추어지기 시작하면서 그 필요성이 차츰 인식되기 시작하여 1800년 무렵부터 좀더 강화되었으나 완전한 정착을 하지 못하다가, 1900년대에 들어선 이후에야 관향을 서로 구별하여 쓰기 시작하였으며, 그 이전까지는 공히 星州와 星山을 混用하였으므로, 관향만으로는 육리를 구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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