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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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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한문교육학회 漢文敎育論集 漢文敎育硏究 제25권 제1호
발행연도
2005.1
수록면
663 - 695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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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流配’는 중죄를 지은 사람에게 주는 형벌로서 일반적으로 경도에서 천리 밖으로 내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기 때문에 엄밀하게 따지면 제주도만이 유배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림잡아서 천리로 간주하고 경상도나 전라도 동남해안 지역을 유배지로 삼았다. 퇴당 역시 경도에서 천리는 채 안되지만 영일현에 위와 같은 기준에 의거하여 강진에서 이배되었다. 퇴당을 좇아 유배지 영일에 온 부인 한산 이씨는 이곳에서 유배생활의 실상을 묘사한 국문가사 고행록을 창작했다.퇴당은 烏川錄을, 부인 한산이씨는 고행록을 통하여 유배생활의 실상과 17세기 말 영일현의 풍광과 그 고장 백성들의 생활상에 관한 정보를 후인들에게 알려줬다.유배인의 행동반경은 법적으로 정해져 있었지만, 해당 수령의 의지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되었다. 오천록을 근거로 했을 때 퇴당은 영일현 관리들에게 심한 박해를 받지 않았던 듯하다. 영일현의 퇴당 부부 처소에 며느리를 비롯한 친지들이 수시로 드나들었지만, 노복을 데리고 왔는지는 기록에서 찾을 수 없다. 이보다 수십년전 장기현에 귀향온 우암 宋時烈(1607~1689)은 노복과 소실을 비롯한 동생과 아들 손자까지 데리고 와서 유배생활을 한 것과는 대조된다.오천록 중 迎日十景을 지정하여 간단한 내력을 적은 후 칠언절구체로 읊은 <오천고사십절>은 17세기 말 영일현 주변 풍광과 문물을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서 특히 주목된다. 퇴당이 음영한 오천지역의 십경 중 오천서원과 오어사, 대서대, 여석굴은 지금도 남아있는데 반해, 의운정을 위시한 대송정, 포자시와 주진, 그리고 죽도는 이름만 전해질 뿐 지금은 없어졌거나 변질되어 그 진면목을 접할 수 없다. 오천서원은 옛날 그대로이나 오어사는 훨씬 증광되어 인근의 유명한 사찰로 격상되어 신도와 관광객으로 분답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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