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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동양고전연구 제40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57 - 94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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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향교의 교육과정과 교육방법에 대해 논한 글이다. 주지하다시피 향교는 고려와 조선의 관학(官學) 교육기관으로 16세기 중반 서원(書院)이 설립되기 이전까지 지방민의 교육을 전적으로 담당했으며, 조선초기의 향교는 학교로서의 ‘교육적 기능’ 뿐 아니라 ‘향민(鄕民) 교화’라는 당시 지배층들의 정치적인 목적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일읍일교(一邑一校)’의 원칙하에 ‘향민들의 교육과 교화’의 중심에 있었다. 아울러 이러한 목적의 실현을 위해 ‘소과(小科) 응시자격 부여’는 교생들에게는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특히 소과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소학󰡕과 󰡔가례󰡕가 필수과목이었으며, 이외 유가서로는 사서⋅오경, 󰡔성리대전󰡕, 󰡔삼강행실󰡕, 󰡔효경󰡕, 󰡔심경󰡕, 󰡔근사록󰡕을, 역사서로는 󰡔통감󰡕과 관련된 책을, 제술(製述)과 관련된 책으로는 󰡔문선(文選)󰡕 류의 책을 익혔다. 그리고 수업방식에 있어서는 교수가 물으면 교생이 답하는 일대일 수업이었으며, 교생들의 학문적 의욕을 환기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도회지법(都會之法)’이 시행되기도 하였다. 재생들의 학업 성취를 비롯한 교육평가에는 크게 학력평가, 행동평가, 출석평가 등으로 이루어 졌으며, 평가 간격에 따라 일일 평가, 월례 평가, 6개월 평가, 임시 평가 등으로 나누어 졌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조선초기의 향교 교육은 지방민의 인재 양성보다는 지배층의 ‘지방민 교화’ 목적에 더 부합했다고 하겠다. 이는 집권층의 지배 질서가 안정을 찾게 된 15세기 말부터 향교의 교육적 기능은 점차 상실되어, 16세기 중반부터 향교를 대신해서 서원(書院)이 지방 교육을 주로 담당하였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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