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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교육사상연구회 교육사상연구 교육사상연구 제31권 제4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85 - 107 (2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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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운동사 근교육사 장면에서 안근은 진론과 진론에 한 논의의 심층을 보여 인물이다. 안근은 1907년을 기으로 진론의 한계와 모호성을 넘어 진론의 가치 와 의미를 수용하고 이를 실천하다. 그 결정은 바로 1909년 10월 26일, 안근이 한의군 참모장 특독립장의 자격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던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안근의 행보가 1907년의 정미의병과 깊은 연계성을 갖는다는 사실은 주목을 요한다. 안근은 진론 에서 진론으로 선회하고, 이는 이토 히로부미의 사살로 이어졌다. 하지만 당시 한국의 핵 심 료・지식인들은 체로 안근의 진론 선택을 민족사 에서 제로 평가하지 못 했다. 그들은 오히려 이토 히로부미에게 조문 가고 이토 히로부미의 송덕비 건립을 추진하 다. 심지어 가톨릭 신자던 안근의 의거에 해 가톨릭계마 당시는 물론 그 후로도 오랫 동안 그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했다. 시를 읽고 상황을 응하는 그들의 논리가 얼마나 형편없 는 것이었는가를 보여주는 단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안근의 동양평화론에 한 근과 논의 한 정한 해석을 요한다. 그 인식의 불안정구조를 제로 읽어내는 가운데 한국 근 교육사를 논할 수 있어야 한다. 안근은 일이 일본발 동양평화론을 신뢰하지만, 그 안에 내장된 정한론 에지를 제로 간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 땅의 지식인들이 안 근을 제로 지키지 못한 결과, 안근은 내선일체 이데올로기를 한 조선총독부의 화해극・ 조작극에 이용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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