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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희용 (서울학연구소)
저널정보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서울학연구 서울학연구 제65호
발행연도
2016.11
수록면
53 - 71 (19page)
DOI
10.17647/jss.2016.11.6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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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기 서울의 도시변동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도시정책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대한제국기는 일본의 메이지기에 해당하는 시기로, 메이지의 식민지 도시에 대한 공간정치는 서울의 근대초기 도시공간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대한제국기로부터 식민지 초기 서울의 도시공간에 대한 연구는 서울의 원형공간과 근대로의 변화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거대도시로 성장한 서울을 이해하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따라서 ‘대한제국과 메이지의 공간충돌’ 이라는 거시적인 테마로, 도시를 지배하는 권력주체가 바뀜에 따라 도시공간은 어떻게 변화되고, 그것이 현재 어떤 모습으로 잔존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현대 서울의 도시공간을 이해하기 위한 단초가 된다.
대한제국기는 전근대 도시에서 근대 국민국가로의 변화가 처음으로 진행되던 시기로, 황궁인 경운궁(慶運宮, 덕수궁)과 원구단(圜丘壇)을 세우고, 근대식 학교가 건립되며, 근대문명의 상징인 전차의 도입과 공원의 조성, 도로망의 정비 등 많은 근대화 사업들이 행해졌다.
그러나 1907년 고종의 황제 퇴위와 더불어 창경궁은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변화되고, 1910년 식민도시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서울은 식민지의 도시공간으로 개조되기 시작했다. 특히 1912년 시구개정사업(市區改正事業)과 이어서 1934년 조선시가지계획령(朝鮮市街地計劃令) 등으로 인하여 서울의 도시구조는 크게 변화되었다. 즉 옛 한양도성의 상징적인 장소에는 일본제국의 상징적인 시설물로 대체되는데, 도성의 북쪽 공간에는 경복궁에 조선총독부 청사, 동쪽으로는 경성운동장, 서쪽으로는 경희궁터에 경성중학교, 남쪽으로는 남산 기슭에 조선신궁과 박문사, 중심에는 경성부청과 여러 상업 및 금융시설물 등을 세워 도시공간의 기본구조를 서서히 바꾸어 갔다. 그리고 도성을 둘러싼 성벽도 허물어져 중세로부터 이어져온 한양의 도시적 정체성은 훼손되어 갔다. 이러한 식민도시 서울의 도시변화에 있어서 메이지의 도시정책은 식민지 도시 만들기라는 거대한 계획의 근원이었고, 이후 식민정책의 변화와 함께 약간의 수정은 있었지만 큰 틀은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따라서 메이지의 공간정치가 식민지 수도 서울의 도시공간에 어떠한 방식으로 변용ㆍ적용되었고 현재 어떠한 모습으로 잔존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도시 건축적인 측면에서 뿐만아니라 역사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이러한 도시변동의 사례로, 현재 한양도성의 남동쪽 남산 기슭에는 대한제국기의 성소인 장충단이 조성되었다. 이 일대는 조선시대 남소영과 훈련원 등의 군사시설이 있었던 곳이다. 이러한 장충단은 식민지 초기에 공원으로 변화되고, 1925년에는 히로히토(裕仁) 일본 천황의 결혼식을 기념하기 위한 경성운동장(東宮殿下御成婚記念京城運動場)이 주변에 건립되었으며, 메이지정권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인물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기리는 사찰인 박문사(博文寺)가 세워지는 등 많은 역사적 사건과 변화들이 중첩되었다. 특히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에서도 메이지기의 원훈(元勳)으로 알려진 중요한 인물이고, 그를 위한 박문사의 조성에는 당시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인 고마다 히데오(兒玉秀雄), 일본 최고의 건축가였던 이토츄타(伊東忠太)가 관여하는 등 식민지 수도 서울의 변화에 있어서 중요한 역사적인 인물과 사건들이 함축된 장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일대의 도시변동에 대한 연구는 대한제국과 메이지의 공간정치와 현대 서울의 도시공간에 남겨진 근대의 기억과 흔적을 잘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키워드가 될 것이다.

목차

Ⅰ. 서론
Ⅱ. 명성황후의 기억공간, 장충단
Ⅲ. 장충단, 제단인가 사당인가
Ⅳ. 결론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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