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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대동문화연구 제71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67 - 94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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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姓과 本貫즉, 姓貫체계의 형성은 高麗초기 국가의 郡縣改編策의 시행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한국인의 성관체계는 시대를 경과하면서 지속적으로 변화되어 갔다. 특히 조선후기에는 성관체계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나타났으며, 그 변화상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노비 인구의 축소와 함께 많은 無姓層이 성관을 갖게 된 것이다. 둘째, 조선전기부터 이루어진 改貫이 지속적으로 진행됨으로써 성관자체의 변동이 나타났다. 개관의 진행은 無姓層의 有姓化과정과 일정한 관련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조선후기에 형성된 성관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측면에 대한 종합적 이해가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대구부 서상면의 호적대장에 기재된 성관기록을 토대로 조선 후기 도시 지역의 성관 변동에 대해 분석하였다. 또한 이를 농촌 지역인 慶尙道丹城縣의 성관 변동과 대비한 결과 다음과같은 결론이 도출되었다. 1. 17세기 후반 대구부 서상면의 전체 戶중에서 50%를 조금 상회하였던 有姓貫戶(A)는 100년이 지난 18세기 후반 무렵 90% 이상의 비율을 점하였다. 18세기를 지나면서 급격한 有姓化가 진행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었던 단성현과 동일한 것이다. 다만 유성화의 확산 추세는 단성현보다는 대구부 서상면이 다소 약했다. 2. 有姓化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대구부 서상면의 姓貫수치도 대폭 증가하였다. 이는 改貫및 大姓化등의 이유로 오히려 성관 수가 줄어들었던 단성현과는 대비되는 현상이다. 특정 성관의 대성화가 이루어지면서도 단성현과는 달리 성관의 수치가 늘어난 이유는 도시 지역이라는 서상면의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3. 대구부 서상면의 유력 성관의 변화는 土姓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대구 지역의 대부분의 토성이 축소, 소멸되어 갔던 경향성이 확인된다. 4. 유성화의 진전은 奴婢戶의 축소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었다. 완전한 성관을 갖지 못한 과도기적인 戶나 성관이 없는 戶는 奴婢戶와 소수의 良人戶였다. 18세기 호적대장에는 노비호의 급감과 비례하여 양인호의 증가가 두드러졌으며, 이는 유성관호 증가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5. 대구부 서상면에서는 특정 성관이 특정 계층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았다. 특정 성관이 특정 계층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은 조선의 성관이 갖는 성격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사실로 여겨진다. 중국의 경우 특정 지역의 성관은 곧 宗族을 의미했으며, 이에 따라 특정 지역의 성관은 단일한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에 비해 조선의 성관은 계층성을 내포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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