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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한국학논총 제44권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217 - 258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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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진천 평산 신씨가 남긴 호구 자료를 분석하여 이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이해하고, 노비의 소유 규모와 존재 양상을 살핀 것이다. 14명의 主戶가 1669년부터 1891년까지 8대 220여 년 동안 51건의 자료를 남겼다. 노비 기재방식은 대체로 호구 자료마다 비슷하지만 시기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다. 17세기에는 외방노비를 지역별로 구분하여 이름과 나이 등을 표기하였고, 특히 申繼의 자료에는 노비의 四祖까지 자세히 밝혀 철저하게 관리하였다. 솔노비질․외거노비질․도망노비질의 분류가 체계적이지 않거나 이름과 나이가 정확하지 않은 것도 있고, 申繼와 申大源의 동일 식년 호적단자와 준호구는 노비의 수와 이름 일부가 일치하지 않다. 그리고 인접한 특정 식년의 자료 사이에 급격한 노비의 증감현상도 보이고 있다. 평산 신씨는 호구 자료를 작성하는 단계부터 혼인한 아들 부부는 물론 형제 부부까지 함께 기재하는 예가 많았고, 반대로 혼인한 아들의 일부와 미성년 아들은 기재하지 않은 사례도 있다. 당시 호적단자는 合戶와 分戶를 거쳐 작성되었을 것이며, 호적대장에서도 다시 편호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평산 신씨가 보유한 노비는 1705년을 기점으로 크게 감소하여 300여 구이던 것이 1726년에는 27구에 불과하였다. 18세기 이후에는 50~20여 구를 넘지 못하였고, 19세기에는 10구 이하였으며, 19세기말에는 1구를 보유하는 정도였다. 이들이 소유한 노비는 모두 1,463구이었으며, 솔거노비가 371구(25.4%)이고, 외거노비가 742구(50.7%)이며, 도망노비는 349구(23.9%)였다. 전체적으로 외거노비가 절반을 차지한 가운데 솔거노비와 도망노비는 비슷하였다. 외거노비는 선대의 묘소가 있는 금천에 90구(14.3%), 한성에 43구(6.8%), 공주에 53구(8.4%)가 있는 등 다양한 지역에 분포하였다. 노비의 남녀 성비는 노가 719구(49.1%)이고, 비가 743구(50.8%)로 비슷하였다. 17세기에는 노와 비가 각각 312구(46%)와 366구(54%)였고, 18세기에는 365구(53.3%)와 320구(46.7%)였으며, 19세기에는 42구(42.4%)와 57구(57.6%)였다. 노비의 나이는 17세기에 壯(16~50세)이 56%를 차지한 가운데 弱(15세 이하)과 老(51세 이상)의 비중은 비슷하였고, 18세기와 19세기에도 장년층이 40% 이상이었다. 미상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노동력이 큰 장년층이 62.9%를 차지한 가운데 21~50세가 51.5%였고, 1~20세 및 51세 이상은 48.5%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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