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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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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민족문화연구 민족문화연구 제80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7 - 46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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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의 시대를 주된 무대로 활동했던 佔畢齋 金宗直(1431-1492)과 梅月堂 金時習 (1435-1493)은 네 살 차이의 동시대 인물이다. 뒷날 한 사람은 성리학의 道統을 계승한 ‘士林의 宗匠’으로 일컬어지고, 다른 한 사람은 그런 삶과는 거리가 먼 ‘方外人의 典 型’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들을 한 자리에서 묶어 다룰 만한 공통의 지점도 존재한다. 같은 스승, 같은 친구, 같은 후배를 중간에 두고 같은 시대를 호흡했다는 객관적 사실은 물론 유교문명의 전환과정에서 견지하고 있던 삶의 자세가 그것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시대정신에 충실한 유교지식인이고 자 노력했고, 그로 인해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와 같은 후대인은 그들을 ‘백세의 스승’ 이라 높여 불렀다. 본고에서는 그런 공통의 면모에 주목하여 그들이 유교지식인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을어떻게 확립해가고 있었는지를 꼼꼼하게 살펴보고자 했다. 완성된 정점에서가 아니라형성되는 과정으로부터 되짚어보는 작업이야말로 조선전기라는 문명전환의 시대를 가장 생동하게 읽어내는 관건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교문명의 때 이른 절정을 이루었다고 평가되는 세종의 시대에 유교지식을 습득해갔던 그들은, 불의 연대기라할 수 있을 단종-세조대에 낡은 전통이라든가 절대 권력과 맞닥뜨리며 적지 않은 부침을 겪어야만 했다. 김종직이 진사시에 탈락하고 지은 <濟川亭>을 통해 문장과 도학을 함께 아우르려던 새로운 시학정신, 김시습이 진사시에서 <崇義殿>을 지어 일으킨파문을 통해 비판적 역사인식은 그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이처럼 패기만만하던 젊은 그들에게 들이닥친 과거에서의 탈락, 그리고 방랑과 파직을 계기로 갖게 된 省察과 自覺의 시간은 유교지식인이 자기정체성을 정립해 가기위한 일종의 통과의례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단련의 과정을 거쳤기에 40대에 들어선 김종직과 김시습은 성종대의 젊은 선비들로부터 ‘시대의 스승’으로 존중받으며 그들에게 돌이키기 어려운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김굉필·정여창·남효온·이심원과같은 젊은 제자/사우가 바로 그들이다. 모두 연산군 때 일어난 두 차례의 사화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되지만, 오히려 그것은 김종직과 김시습이 ‘시대의 스승’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역설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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