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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민족문화연구 민족문화연구 제51호
발행연도
2009.1
수록면
215 - 251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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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5세기 후반 南孝溫의 「屋賦」로부터 17세기 전반 張維의 「神明舍記」에 이르기까지 성리학적 이념을 寓言的으로 표현한 일련의 한문산문에 주목하여, 시기별로 주제의식과 우언 활용의 양상 및 그 문학사적 의미를 모색하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우선 성리학적 심성수양을 다룬 心性 擬人體 우언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는 조선시대 성리학이 특히 심성수양 문제에 천착했던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주요 작가들이 남효온과 임제처럼 방외인 문인이거나 박영, 조식, 장유 등과 같이 성리학뿐만 아니라 노장사상 등에 상당히 개방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던 문인학자였다. 이러한 성향은 이들이 유가적 문예의식과 거리가 있는 우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다음으로 주제의식이나 우언 활용의 양상이 시기별로 차이를 보였다. 15세기 후반 남효온의 「옥부」에서는 노장사상과의 대결 속에서 성리학적 심성 수양론을 정립하려는 정신적 갈등을 보게 된다. 여기서 우언은 노장과의 정신적 쟁투를 가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로 사용되었다. 16세기 조식의 「신명사명」이나 김우옹의 「천군전」에서는 추상적인 성리학 개념을 쉽게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우언이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7세기 장유의 「신명사기」나 「設孟莊論辯」에 오면 성리학적 이념에 대한 반성이 일어났는데, 장유에게서 우언은 기존의 질서나 신념 체계를 뒤틀어봄으로써 반성을 촉구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한국 한문 산문사에서 우언이 다양하게 활용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고려 말 수용된 성리학이 16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사대부들의 의식세계에 어떤 과정을 거쳐 내면화되고 변모되는지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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