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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석당논총 석당논총 제47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181 - 247 (6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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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서 중요한 사회변동기의 하나로 인식되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행하는 과정의 정치지배세력에 대한 기왕의 연구는 지배세력 교체론과 지배세력의 지속성을 강조하는 상반된 입장으로 정리된다. 이 글은 여말선초 지배세력의 지속성과 변동에 대한 개연적인 논의를 보충하기 위해 개별가문의 사례를 실증적인 분석을 통해 밝힌 작업이다. 여흥민씨 가문은 고려 무신집권기인 명종조 문하시랑평장사를 역임한 민영모와 두 아들 민식, 민공규 이래 다수의 고위 관료를 지속적으로 배출함으로써 고려후기에는 명문세족으로 성장한 가문이다. 이 가문 출신의 관료들은 대체로 문반직을 역임함으로써 고려후기 여흥민씨는 문반가문으로서 위상을 갖추었다. 가계별로는 민식의 가계가 민공규가계보다 관료배출수나 고위직 역임자의 수에 있어서 우세했다. 조선전기에 이르면 각 가문은 분파가 확대되면서 내부에서 가계가 번성하는 파와 그렇지 못한 파로 확연히 구별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여흥민씨 가문을 거족이라 지칭할 때, 적어도 조선전기에 한정해서 보면 구체적으로 민식의 계열에서는 증손 민지의 장자 민상정가계와 차자 민상백가계가, 민공규계열에서는 증손 민종유의 장자 민적의 가계가 이에 해당된다. 특히 민적의 3자 민변-민제(문도공파)로 이어지는 가계는 조선전기를 통해 여흥민씨 가문 가운데 가장 명문 계열로 지목되는 가계다. 조선전기 여흥민씨 가문은 이들 가계들을 중심으로 다수의 과거급제자와 고위관료의 배출, 공신책봉, 왕실과의 통혼으로 외척으로서의 위상 등 권력의 핵심에 근접하는 요인이나 자손의 번성 등의 요건을 두루 갖춤으로서, 조선건국 이후에도 여전히 고려후기 이래의 명문 거족가문으로서의 위상을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왔다. 계열별로 보면 과거급제자수는 민지의 계열이 민종유의 계열보다 압도적 다수를 배출하였으나, 3품 이상의 고위직자의 배출은 오히려 민종유계열이 월등히 우세하다. 이는 민종유계열 인물들의 고위직 진출 요인은 과거 외의 요인들이 더 크게 작용하였음을 의미하고, 이 계열에서 배출된 공신책봉과 왕실혼의 핵심인 왕비배출과 관련된다. 통혼권에 있어서도 조선건국 이후 여흥민씨 가문 민지계열은 왕실과 연결되며 왕비의 외조부가로서 가문의 위상을 높여 갔고, 민종유계열 또한 태종의 즉위로 인해 왕실의 외척가문으로서 가문의 위상이 급부상하였다. 그러나 왕비로 간택된 민지계열 출신 외손녀들의 불운이 이어지면서, 또한 태종의 왕권강화책과 정치운영방식에 따른 외척세력 제거에 의해 여흥민씨 가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민제의 네 아들들이 차례로 죽임을 당하면서 조선전기 여흥민씨 가문의 위상과 위세는 급격히 추락하였다. 이 가문의 복권은 적어도 세종 중반 이후까지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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